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아아!! 이순신 <영화, 명량>

오애도 2014. 8. 13. 03:24

'명량'을 보고 왔습니다.

아이들과 시간 되면 같이 가기로 했는데 약속한 아침 시간은 도저히 안되어서 혼자 터덜터덜 보고 왔습니다.

오후 11시 30분... 관객은 열 명 남짓...

나는 혼자 눈을 빛내며 표를 사고 눈을 빛내며 '나'와 손잡고 '나'와 대화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소설 '칼의 노래' 이후 내게 이순신은 민족을 구한 영웅으로 위인전기 속의 인물에서 감성 가득하고 과묵하며 검의 푸른 서슬에서 맑은 바람소리가 날 것 같은 인물로 바뀌었습니다.

어릴 때 가장 드라마틱하다고 느끼며 읽었던 위인전기가 이순신이었고 그때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백의종군이란 말이었습니다.

 영화는... 이순신이라는 캐릭터의 놀라운 무게감으로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는 영화입니다.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조차 압도하는 캐릭터의 승리는 배우 최민식의 신기-神氣-어린 연기와 -대사도 많지 않고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다- 그의 얼굴을 내내 클로즈업으로 잡아냄으로써 극중에서 주인공의 카리스마와 리더십, 굳센 의지와 신념의 크기를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카메라 워크에 있을 것입니다.

 늘 얘기하지만 누구나 신념이 있고 그 신념이 일생을 지배하지요. 이순신은 마음을 다하는 것이 충성이고 그 충성은 임금에게가 아닌 백성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나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충성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은 곧 '나'를 믿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도 곧 '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영화 전체의 짜임새는 그닥 촘촘하지 않았는데 스펙터클하고 사실적인 전투장면이 그걸 제법 상쇄합니다.

 내게도 어느 정도 신기같은 게 있는지 약간은 영화 전체에 뭔지 모를 신기가 있어 보였다는...

 드라마의 기원이 제사의식-ritual-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배우는 어쨌든 캐릭터를 현실의 인물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빙의의 단계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신과 교통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잘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보고 나서  이게 최민식이 멋있다고 해야 하는지 이순신 장군이 멋있다고 해야 하는지 헷갈릴 만큼 인물이 살아 있었습니다.

 

 멋있소, 최민식 씨. 오래 전에 연극, 에쿠우스와 택시 드리벌에서 침 팍팍 튀며 연기했던 걸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화 끝나고 나니 두 시가 가까웠습니다. 이어폰 꽂고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으며 밤안개 자욱한 강남대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시 가까운 시간에 강남역 주변은 묘한 감흥이 있습니다. 북적이던 사람들은 거의 없고 불빛은 밝은데 한가하고 고즈넉합니다. 그 거리 낮의 얼굴을 선명히 알고 있으니 밤의 그 고즈넉함은 굉장히 생경해서 나는 종종 자리에 선 채로 두리번두리번 합니다.

나는... 젊은이도 아니면서 노래를 웅얼웅얼 따라 부르면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24시간 영업하는 롯데리아도 버거킹도 KFC도 지나면서 불쑥불쑥 저기 들어가 햄버거 셋트나 하나 시켜 먹을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고 돌아왔습니다.

 오면서, 그래도 집에 가면 엄니가 있네... 생각하니 우리 집 쪽에 몽글몽글하게 온기 같은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