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1113

쓸쓸하고 찬란한...-도깨비 아님-

올해 나는 세는나이로 예순하나가 되었습니다. 회갑이거나 환갑으로 불리는. 아직도 생각의 어느 구석은 열두 살 아이 같은데 이젠 어딜 가든 어르신-??-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하하 나야 어려 보이거나 젊어 보이려고 크게 애써본 적 없고 뭐 애쓴다고 될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나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것을 누리며 살자주의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이 먹어 나이 대접받는 게 크게 나쁘지도 않습니다. 사실 나이 먹고 나잇값 못하고 사는 것을 더 경계해야겠지요. 나이 먹은 게 유세가 되고, 먹은 나이만큼 뻔뻔해지고, 생각이 굳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에 완고해지는 건 부끄럽고 슬픈 일인지라 늘 생각을 점검하고 마음을 살피고 행동을 가다듬습니다.  예전엔 회갑잔치라는 걸 할 만큼 60년을 사는 게 어려웠는데 ..

봄 밤에...

지난 주 이때 쯤 나는 혼자 텐진거리를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후쿠오카는 시내가 그다지 넓지는 않아서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서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들어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와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대부분 중심가가 전철로 한 두정거장이어서 걸어서 시내만 어슬렁거리다 돌아온 여행... 그래도 버릇 때문에 새벽 네시면 일어나 창문 밖으로 도시 풍경을 보며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패드로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하던 호텔에서의 아침 시간이 참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소리-방송-를 들어가며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보고 있자면 말할 수 없이 묘한 감흥이 일어납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고요하기 짝이 없는 호텔방에서 산다는 게 무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먼 나라로 대부분 패키지 여..

봄, 3월, 토요일 그리고 나...

시간은 훌쩍 흘러 3월의 끝자락입니다. 묵정밭이 돼 가고 있는 듯한 이곳에 한송이 들꽃을 피우듯-뭐래??-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큰오라버니의 암진단 소식에 한동안 아니 지금도 마음 한켠은 묵직하지만 나머지 모든 것들은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매일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치고, 참으로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아이들과 활기차게 놀아주고 있으며, 가끔 친구들과 만나 새새 수다를 떠는... 딱 이만큼이면 더 바랄 게 없는 날들입니다. 명색이 수험생인 관계로 소소하게 신경이 쓰이거나 시간을 잡아 먹는 일은 모두 멈추고 수험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주말에 지난 2월에 만났던 초등동창 모임, 그 중에 다시 동네 친구들과 약속에 있어서 고향엘 내려갑니다. 어릴 때..

어느덧...

2월의 중순이 지나고 하순을 향해 달려갑니다. 감기 후유증으로 시름시름...까지는 아니지만 성가신 기침과 콧물에 두달 가까이 시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손톱만큼씩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후각이 마비되어서 먹는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동안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 감기 증세가 특별히 아픈 데 없이 시름시름 길면 두어달 가까이 끌고 가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병원에도 가 봤지만 별 뾰족한 처방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천천히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이러다 영원히 후각 마비로 맛없게 음식을 먹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맹맹한 코와 밭은 기침으로 일상이 영 제자리가 안 잡혀서 공부가 밀도 있게 되질 않았습니다. 머리가 약간 머엉해서리 일곱 시간..

정월에...

새해가 된 지도 벌써 한달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이 같은 날인데 이상하게 12월 말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가는 날은 산 하나를 넘거나 깊은 강을 건너야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평생 하고 살았습니다. 막상 닥치고 나면 그냥 똑같은 하루일 뿐인데 말이지요. 3주 넘게 감기로 고생 중입니다. 기관지이거나 폐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가래 기침에 시달리다가 이제 겨우 나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덴 특별히 아프진 않으니까 그럭저럭 버티지만 물리적으로 기침을 하느라 힘드니까 소소한 생활 루틴이 영 엉망입니다. 아직도 후각은 전혀 돌아오지 않아서 무얼 먹어도 맛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이 안 드니 에라 모르겠다 대충 안 먹던 라면으로 끼니 때우기를 일삼고 있습니..

Adieu!! 2023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늘 현재는 성큼성큼 지나가고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는 듯합니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는 그저 물같은 날들이었습니다. 소소한 마음 쓰임이야 없을 수는 없었지만 이만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 대단히 좋은 해 중에 하나입니다. 거의 일년 내내 공부가 즐거웠고 그리하여 새해를 또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는 오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자꾸자꾸 만나져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급기야는 초등학교 동창 100여명과도 연락이 닿아 카톡이 폭발할 지경으로 활기차고 따뜻하고 애틋한 메시지들과 인사들이 넘쳐납니다. 나이 60이 돼서 이렇게 모두들 서로 반가워할 수 있는가 믿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지난 화요일엔 대전에서 오랜 친구가 찾아와 하룻밤을 자고 갔습니다..

차고 맑은 겨울 하루

지난 6월 생일에 멀리 사는 친구가 과일 바구니를 보내주었습니다. 그 과일 바구니에 아보카도가 한 알 들어 있었지요. 후숙해서 맛있게 먹고 씨앗을 물에 담가 놓았었습니다. 나무를 키워보자!! 오래오래 걸려서 씨앗은 싹을 틔웠습니다. 대체 어떤 힘이 그 단단한 껍질을 벌리고 여린 싹을 내밀게 하는 것일까요. 놀라운 자연의 힘입니다. 싹을 튀우는 데만 두달 넘게 걸린 듯합니다. 여린 싹이 나오고 줄기 모양을 갖추었을 때 저렇게 이쑤시개를 꽂아 컵에 걸쳐 놓았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힘찬 뿌리가 나왔고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쑥쑥 자랐습니다. 뿌리가 나온 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자 한치 망설임도 없이 몸살조차 앓지 않고 자랐습니다. 하여 지금 이런 모양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자 자라는 속도가 ..

사랑니... 엄니 생각

며칠 전에 자다가 문득 혀로 왼쪽 윗잇몸을 핥았는데 어라!! 분명 오래 전에 빼버렸는데 거기에 튼튼한 새 이가 나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가 날 자리가 있었나.... 하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선명해서 실제로 잇몸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당연히 사랑니 빠진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이가 나는 꿈은 그저 말만으로도 좋은 느낌이 드는 꿈입니다. 평생 동반할 삶의 물리적 도구가 생기는 것이니 말입니다. 반대로 이가 빠지는 꿈이 좋을 리는 없습니다. 대체로 가족이나 직장 내의 사람에 관계된 것이 많지요. 예전에 대학로에서 일을 할 때 같이 일하던 동료가 어느 날 어금니 하나가 구멍이 나 있더라는 꿈 얘기를 했었습니다. 무심코 들어 넘겼는데 며칠 후 갑자기 내가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만추... 충만한 시간들

시간은 문득 흘러 계절을 꽉 채워서 만추입니다. 또한 늦은 가을이라 만추이겠지요. 엊그제 수능 시험을 치렀습니다. 애초에 연습이라는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당일 새벽까지 잠이 안 와서 결국 두어 시간 자고 시험장에 갔습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잔뜩 가을 서정 가득한 학교에서 시험은 잘 치렀습니다. 소풍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험 날짜를 체크하고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습니다. 어릴 때 객지에 나와 여러 번 치른 검정고시나 대입 학력고사 시험일 때도 나는 늘 내 손으로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쌌습니다. 문득 시험날이라고 엄니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시험장에 가는 마음이란 게 어떤 걸까... 생각해 봤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늘 씩씩했고 내 손으로 훅훅 무엇이든 만들어 도시락을 쌀 수 있는 게 얼..

가을 중간에서...

어느새 불쑥 가을이 왔다가 복판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은 매일매일 글을 올려야지... 생각만 굴뚝같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물처럼 흘러가는 중입니다. 그동안 돌보던 아기는 이제 많이 커서 재잘재잘 말하는 게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리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회자정리의 이치를 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불쑥 온다해도 크게 집착이 없으리라는 걸 예감합니다. 종종 착한 제자가 찾아와 오랫동안 오랫동안 얘길 하고 갑니다. 이제 성인이 된 오래 된 제자들이지만 삶의 갈피 갈피나 일상의 굽이굽이에서 마음이 복잡해지면 그래도 어른이고, 선생이라고 찾아와 조언을 구하고 경청해 주는 제자가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난 주엔 오랜 친구를 만나러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