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봄 밤에...

오애도 2024. 4. 7. 19:43

지난 주 이때 쯤 나는 혼자 텐진거리를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후쿠오카는 시내가 그다지 넓지는 않아서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서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들어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와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대부분 중심가가 전철로 한 두정거장이어서 걸어서 시내만 어슬렁거리다 돌아온 여행...

 그래도 버릇 때문에 새벽 네시면 일어나 창문 밖으로 도시 풍경을 보며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패드로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하던 호텔에서의 아침 시간이 참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소리-방송-를 들어가며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보고 있자면 말할 수 없이 묘한 감흥이 일어납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고요하기 짝이 없는 호텔방에서 산다는 게 무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먼 나라로 대부분 패키지 여행을 했던 터라 늘 단체 일정에 쫓겨서 시간 맞추느라 허둥대던 것에 비하면 이렇게 혼자서 여유롭게 내 맘대로 아침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신세계입니다.

일본은 편의점 음식이 맛있대서 이것저것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아침으로 먹었습니다. 저녁엔 종일 걸어다녀서 다리는 무거웠지만 뜨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와 혼자서 시원한 맥주 두 캔 마시고 사각거리는 호텔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물론 잠은 잘 오지 않습니다. 엎치락 뒤치락 하다 일어나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눕고 누웠지만 잠은 안 오고... 

그렇게 이틀동안 잠은 못 잤지만 이상하게 낮엔 기운이 펄펄 나서 여기저기 쏘다녔습니다. 낯선 길을 헤매고 사람 많은 길을 무작정 걷고 백화점 지하에서 음식을 사와 호텔에서 먹었습니다. 줄 서 있는 사람들 틈에서 기다렸다가 라멘도 먹었고, 아침 일찍 걷는데 사람들이 또 길게 줄을 서 있길레 나도 얼떨결에 줄 서서 빵도 잔뜩 사서 공원 벤치에서 먹고 호텔에서도 먹고 결국 집에까지 갖고와 먹었습니다. ㅋ

 나중에 보니 그곳이 대단한 빵맛집이었더군요. 

물 쓰듯 쓰겠다고 갖고 간 지폐가 생각보다 쓸일이 없어서 결국 백화점에 가서 안되는 일본어와 영어로 얘기해가면서 멋진 썬글라스도 하나 샀습니다. 한국 사람들 많아서 도처에서 한국어가...

 어쨌거나 나홀로 해외 여행 첫발은 떼었으니 이제 다른 도시도 실실...

  조만간 후쿠오카는 다시 갈 생각입니다. 이번엔 제대로 계획 세워 관광지나 맛집 다니기...

 집에서도 늘 혼자 지내지만 낯선 곳에서 또 혼자 지내는 것도 그 나름의 감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기 전날 만났던 고향 친구들이 내내 안부를 물어줬고-다음 날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다른 친구들과도 카톡을 해 가며 다니니 한편으로는 뭐 혼자 있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뭐든 생각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실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렇게 하나하나 죽기 전에 실행을 해야겠습니다. 

 특별히 아픈 데도 없고 건강 염려증도 없고 특별히 죽음을 두려워 하지도 않는데 꼭 저만치 끝이 다가와 있는 것 같고 자꾸 삶의 끝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날인 듯 살아야 시간을 충실하고 고귀하고 아름답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때문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은 즐거웠고 일상은 평화로운데 이렇게 찬란하게 꽃 피는 봄날에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근원적인 쓸쓸함과 허무가 오늘은 묵직하게 나를 내려 앉힙니다. 

 큰오라버니가 2차 항암 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문득 깨닫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시간은 봄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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