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생일에 멀리 사는 친구가 과일 바구니를 보내주었습니다.
그 과일 바구니에 아보카도가 한 알 들어 있었지요. 후숙해서 맛있게 먹고 씨앗을 물에 담가 놓았었습니다.
나무를 키워보자!!
오래오래 걸려서 씨앗은 싹을 틔웠습니다. 대체 어떤 힘이 그 단단한 껍질을 벌리고 여린 싹을 내밀게 하는 것일까요.
놀라운 자연의 힘입니다.
싹을 튀우는 데만 두달 넘게 걸린 듯합니다. 여린 싹이 나오고 줄기 모양을 갖추었을 때 저렇게 이쑤시개를 꽂아 컵에 걸쳐 놓았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힘찬 뿌리가 나왔고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쑥쑥 자랐습니다.
뿌리가 나온 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자 한치 망설임도 없이 몸살조차 앓지 않고 자랐습니다.
하여 지금 이런 모양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자 자라는 속도가 줄었지만 손바닥보다 더 넓은 잎이 푸르고 싱싱합니다. 햇빛이 썩 잘드는 집이 아닌데 물만 먹고도 쑥쑥 자랍니다.
원래 강인한 식물인 모양입니다. 싹을 틔우는 기간에 비하면 자라는 속도는 눈깜짝할 새입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아무런 징조도 없이 있다가 껍질이 벗겨지고 조금씩 조금씩 갈라지던 과정은 제법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싹을 튀우는 과정을 매일매일 들여다 보면서 문득 '나 같은 걸...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하
나는 어쩌면 그렇게 오랫동안 껍질에 쌓여 있었던 인간은 아닐까... 이제 비로소 싹을 튀우고 잎을 펼치는 시기가 된 건 아닐까...
하여 튼실한 줄기가 자라고 제법 무성한 잎을 피우고 어느 날 문득 장렬하게 스러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싹을 틔워 자란 나무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열매가 없어도 무성하고 푸른 잎만으로 마음이 충만한데 말이지요.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시험을 한 달 앞둔 학생처럼 책상에 붙어 있습니다. 겨울형 인간인지라 이렇게 광꽝 얼어붙게 추운 날엔 종일 방안에서 책을 보는 일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합니다.
다시 영어 단어 외우기를 하고 구문 독해를 하고 새로 수학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몸 가벼운 음식을 먹어가며 괜히 시간이 아까워 동동거립니다. 그렇게 훌쩍 하루가 지나갑니다.
요즘 들어 새 옷 몇벌을 사고 비싼 새 가방도 샀습니다.
한동안 당최 사고 싶은 게 없었다가 주섬주섬 한 보따리 코트며 신발을 사 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합니다. 이제 이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할 일이 많이 생기겠구나...
어떤 충동적인 행동은 그 안에 실행의 예감이 잠재돼 있습니다.
예순의 나이를 살아내고 보니 웬만한 일상의 섭리가 훤하게 꿰뚫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저 고맙고 감사한 12월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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