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만추... 충만한 시간들

오애도 2023. 11. 19. 23:18

시간은 문득 흘러 계절을 꽉 채워서 만추입니다. 또한 늦은 가을이라 만추이겠지요.

엊그제 수능 시험을 치렀습니다. 

애초에 연습이라는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당일 새벽까지 잠이 안 와서 결국 두어 시간 자고 시험장에 갔습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잔뜩 가을 서정 가득한 학교에서 시험은 잘 치렀습니다. 

소풍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험 날짜를 체크하고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습니다. 어릴 때 객지에 나와 여러 번 치른 검정고시나 대입 학력고사 시험일 때도 나는 늘 내 손으로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쌌습니다. 

문득 시험날이라고 엄니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시험장에 가는 마음이란 게 어떤 걸까... 생각해 봤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늘 씩씩했고 내 손으로 훅훅 무엇이든 만들어 도시락을 쌀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지만 올 가을엔 사무치게 엄니가 그리웠던 터라 계란말이 대신 계란찜을 하고 미리 재워놨던 제육볶음과 주문한 갈비탕을 보온 도시락에 담으며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엄니가 계셨던 어린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국어 시험은 꽤 까다로워서-어렵다기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였다-  시간 안배 훈련이 덜 됐던 탓에 손도 못댄 문제가 많아서 아쉬웠지만  이만하면 연습으로는 충분이 된 것입니다. 

내년엔 제대로 잘 해봐야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저 내년 회갑기념 응시 연습용이라고 해도 여기저기서 초콜릿도 받고 시험 끝나고 먹으라고 전복죽도 받았습니다. 하하하. 

시험 끝나고 나니 갑자기 할일이 없어져서 또한 마음이 서성서성합니다.

 어쨌든 8개월동안 말할 수 없이 충만하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어쩌면 내가 노력한 진정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하여 공부하면서 내내 마음이 걸렸던 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데 결과까지 좋을 리는 없을 거라고 미리 각오를 했던 터라 처음 국어 시험지 받아들고 그냥 거저 주는 독서론 문제의 본문이 그저 후루루 한 큐에 읽히지 않는 걸 보고 예상이 맞아들어가는구나를 생각했지요. -보통 때 풀면 세 문제 풀 때 3분도 안 걸리는 문제임-.

  그런 의미로 내년엔 좀 힘도 들고 어렵기도 하고 해야 할텐데 여전히 과정에 대한 기대로 설렙니다. 

 언젠가 반드시 올 1등급 받는 게 목표인데 이번에 아이러니하게도 공부 1도 안 한 한국사-만점임-랑 한문입니다. 적어도 두 개는 1등급임 ㅋㅋㅋ 국사 다 풀고 마킹까지 했는데 7분도 안 걸렸음. 사실 크게 의미있는 과목은 아님. 

 국어 영어는 시간 모자라 가채점표 작성을 못했고-해 봤자 결과는 망- 사탐 두 과목은 두 세 개씩 틀린 거 같은 데 흠...

다른 거 안 하고 EBS 강의만 들었는데  선생님들 정말 잘 가르치시고 열정 가득 넘쳐서 게시판에 감사했다고 인사 적고 있습니다.

 내년엔 아무래도 수학을 제대로 해야 하니까 사설 인강 패스를 하나 사서 병행을 할 생각입니다. 정 안되면 대치동 수학학원이라도 다닐 생각이고요. 시험과 상관 없이 수학은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싶어서요.

낮에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 펼쳐놓고 두어시간 기본 문제 풀었습니다. 연산 문제인 탓에 단순한 한 문제를 정직하게 풀면 연습장 반페이지가 가득 차지만 답이 딱 맞아 떨어지면 그게 레고 조립하거나 피스 많은 퍼즐 조각 어렵게 찾아서 딱 맞아들어갈 때의 쾌감이랑 비슷합니다. ㅋ

 내년엔 머리는 좀 더 달그락 거릴 것이고 눈은 좀 더 침침해지겠지요. 그럼에도 또 열심히 살아봐야겠습니다. 

물처럼 고요한 일상에서 꽉 채워진 시간의 밀도를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매일매일을 마지막 날인 듯 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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