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늙는다는 것, 가족, 자식, 부모... 영화 <장수상회>

오애도 2015. 4. 22. 23:01

오늘 울엄니 생신입니다.

엄니한테 안 가고 전화 한 통화만 했습니다.

저녁에 혼자 나가 영화 장수상회를 봤습니다. 영화 소개에서 봤던 부의-賻儀-의 봉투에 적혀 있던 자신의 이름과 혹시 나를 발견하면 통장에 있는 돈으로 장례를 치뤄달라는 한 장면만으로 어떤 영화인지 짐작할 수 있는 영화였지요. 예상과는 좀 달랐지만 맥락은 예상대로였습니다. 그저 늙은-??- 배우가 치는 늙은 사람으로써의 어떤 대사는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드라마는 사실 전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것이 그래도 괜찮은 거야... 혹은 이래야 되어, 혹은 이랬으면 좋겠어...

영화는 언뜻 노년에 찾아온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거나 아니면 그것을 통해 강요된 노인문제를 다루려나보다... 했는데 그것은 아니더군요. 그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늙음의 쓸쓸함 속에서 그래도 이해하고 보듬고 등 두드려주는 것은 가족이다... 가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런데 말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그 쓸쓸하고 참혹한 초대한 적 없는 인생의 말년의 고뇌와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줄 누군가가 있기는 할까요?

 영화에서 노인은 자신이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에 가장 절망합니다. 물론 자식들은 영화니까 늙고 병든 부모가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저 전망일 뿐입니다.

 

 작년에 아픈 엄니랑 있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나의 늙음과 죽음입니다. 어떻게 혼자서 자알 늙고 자알 죽을 것인가...

엄니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험 같았습니다. 늘 마음 속으로 빌었지요. 아부지... 평생 울엄니 힘들게 고생시켰으니까 엄니 가실 때 덜 힘들고 편안하게 데리고 가시라고...

 엄니는 그러면서 내 보험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다음 주에 오시는 엄니 보면서 주문처럼 마음 속으로 외울랍니다.

엄니... 시간이 흐르고 엄니 가시고, 또 세월이 흐르고 흘러 엄니 하나밖에 없는 딸도 갈 때가 되면 말이지, 그냥 편하게 데려가 줬으면 좋겠어. 너무 오래 살게 하지 말고 정신이 뒤죽박죽 되고 마음이 참혹해지고 몸이 바스락거릴 때까지 살게 하지 말고....  엄니, 평생 온전히 누구에게도 기댈 수도 기대본 적도 없었던 엄니처럼 한 번도 누구에게 기댈 수 없었던 딸 좀 불쌍하게 생각해서 말이지...

 그런데 어떡하지? 자손들에게 복을 내리려면 저 세상에 가서도 많은 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그래도 엄니한테 밖에 나를 온전히 맡길 수가 없는 걸.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태 쯤 지나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살아 생전에 힘든 일 할 수도 없었고 하시지도 않았던 아버지가 푸른 색 작업복을 입고 호텔의 청소부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들어가자 아버지는 얼른 식탁에 앉으라고 하시고 커다란 냉면 그릇에 냉면을 말아주시면서 옆에 있던 동료들한테 우리 딸 애도... 라고 자랑을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그렇게 몇해 동안 청소부로 열심히 모아서 제게 상금을 주신 것인지 모릅니다.

 아마 아버지는 우리 애도... 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저쪽 세상에서 호텔 청소를 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미안한 마음이 사랑의 진정한 느낌일 것입니다. 부모는 늘 미안하고 자식은 그게 늘 당연하고...

나는 자식 같은 게 없어서 진정한 사랑 따위 모릅니다. 하여 자식 낳아서 등줄기 아린 미안함이 사랑인 줄 알면 그 사랑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배우 박근형 씨의 연기에 박수쳐 주고 싶습니다. 

원작은 러블리 스틸인가 하는 미국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