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깊은 신뢰도 사랑일 수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

오애도 2015. 4. 2. 20:51

엊그제... 새벽 세 시 넘어 자는 버릇을 고치겠다고 일찍 누웠다. 그리고 그렇게 누워 자기 전 시간이 내게는 유일하게 티비를 보는 시간...

난무하는 채널의 홍수 속에서 무심하게 돌리다가 걸린 영화 양들의 침묵!!!!

늙은 대학생일 때 봤으니까 90년 아니면 91년도였으리라-찾아보기 구찮어서... ^^-

공포영화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어릴 때 티비에서 본 '오멘'이었고-어린애가 악마로 나오면 대단히 공포스럽다- 가장 오래 깊이 그리고 무게 있게 시달렸던 영화는 바로 '양들의 침묵'이었다. 눈 똑바로 뜨고 보지 못한 장면도 많았는데 돌아와서 일 주일 쯤 잠자리가 불편했고 꿈자리가 사나웠고 마음과 정신이 이상하게 민달팽이 피부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화면이 지금 보면 굉장히 참혹한 것도 아니었는데-CSI 시리즈같은 리얼한 하드고어에 익숙해져서인지도...- 렉터박사의 식인의 기호와 더불어 놀라운 눈빛 연기는 정말 신기에 가까워서 단순한 물리적 공포가 아닌 심리적이고 정서적이며 지적이기까지 한 공포를 유발한다. 영활 보면서 놀랍도록 지적이지만 식인의 습관과 거기서 오는 거의 신적인-??-힘을 보여주며 설득력 없는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들과는 정말 급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나는 안소니 흡킨스가 훨씬 젊었을 때부터 그의 팬이었다. 어떤 작품을 보고 그 어린 나이에 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그의 깊은 눈을 좋아했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10대였을 때 티비 미니 시리즈였던 전쟁과 평화에서 그는 베주호프 백작역을 맡았었는데 내 기억 속의 가장 젊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후로 가을의 전설이나 조로 같은 영화에서도 그는 멋있는 노인-??-이었다. 

 죠디 포스터는 한때, 영화는 못 보고 영화 잡지만 볼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 '택시 드라이버'에서 언급돼서 처음으로 알게 됐던 배우였다. 어린 창녀 역할이었고 로버트 드니로가 맡았던 택시 운전사인 남자 주인공이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의 소재나 내용상 그리고 당연히 상업적인 이유로 개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화제가 됐던 이유는 존 레넌을 죽인 범인이 그 영화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우울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로버트 드 니로의 모습이 실린 포스터를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는 이유도 없이 뉴욕의 부르클린을 가보고 싶어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그 후 명문 예일대에 진학을 했고 헐리우드에서 가장 지적인 배우로 꼽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탈링과 렉터 박사의 놀라운 교감과, 색깔은 분명 다르지만 '사랑'이라고 불려도 좋을 깊은 신뢰를 나는 스탈링의 손가락을 스치던 렉터 박사의 손과 눈빛 장면에서 20여년 전에도 선명하게 느꼈었다. 

그것은 굉장히 에로틱하기까지 했는데  영화 보고 나서 나는 내가 느낀 것이 정말 근거가 있는 것일까에 대해 한동안 숙고하기까 했었다. 물론 다시 볼 엄두는 못냈고...

 때로 나의 어떤 판단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도 놀랄만치 들어 맞는 경우가 있는데 예전에 어떤 박수가 그랬었다. 당신의 통찰은 일반인으로써는 거의 신적-??-일 거라고...

뭐 그게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양들의 침묵에서 봤던 그 장면의 내포적 의미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어쩌면 각자 양의 울음 소리로 대변되는 정신적인 상처를 안고 살고 있을 것이다. 상처 없는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이 아닐 터.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나의 내면에 울리는 양의 울음 소리를 간파해 내고 그 울음을 침묵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을 이생에 만나기는 할 것인가. 그렇게 정신적 교감을 나눌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가당찮은 욕구가 하필 가려움증처럼 솟다니!!! ㅋㅋㅋ

 

 지적인 조디 포스터가 멋있고 여전히 지성으로 가득차 보이는 안소니 흡킨스는 매력적이다.

난 전생에 영국인었는가. 안소니 흡킨스도 그렇고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나 존 길구드 경, 혹은 케네스 브레너 같은 영국 출신 배우들은 이상하게 멋있어 보였었다.

 

영화는 확실히 극장에서 보는 것과 방안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불 환히 켜 놓고 보는 스릴러는  분명 스릴러에 대한 모독이긴 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 덜 피로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