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

오애도 2011. 9. 9. 14:46

 그날... 청계산엘 다녀왔습니다. 주섬주섬 점심시간 무렵 뜨겁게 물을 끓이고 컵을 챙겨넣고 바느질용 헝겁도 죄 마름질하고 바늘과 가위와 실도 챙기고 책도 한 권 넣었습니다.

 산 입구는 여전히 텅 비어 고즈넉하게 나를 반기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오로지 '나'를 위해 지어놓고 비워놓은 것처럼 보이는 평화스런 풍경입니다.

 

 

  여전히 내 자리는 비어 있었구요. 순간순간이 감사했던...

 

 

 

 

주섬주섬 이것저것 꺼내놓고 뜨건 물 부어 점심으로 컵라면이랑 삼각김밥 한 개를 먹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를 쉼터에 앉아 있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도 지나가지 않았고 나는 오로지 나와 대화하며 나무와 바람과 풀향기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세상과 시간은 '나'를 위한 만찬같았지요. 뭉클뭉클 한없는 평화가 감사했지만...

결국 모기가 너무 많아 책 읽는 것도 바느질고 못하고 산엘 오르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운동도 전혀 안 했고 체중은 늘어서 몸에 데미지가 올 것은 자명했지만 고즈넉한 산길을 포기할 수 없어서 천천히 느릿느릿 걸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더 이상 길은 고즈넉하지 않고 수선스러워집니다.

오거리나 되는 곳이어서 돌아서 내려가는 길 말고는 어느 길로 가든 한적함은 끝이지요. 그래도 올라온 길을 되밟을 수는 없어서 반대편 길로 내려왔습니다. 겨우  반 밖에 안 올라갔었는데 나흘이나 지났는데도 종아리 근육이 땡깁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던 햇빛이 찬란해서 문득문득 이마에 손 얹고 바라봤던 풍경이 평화롭고 감사해서 눈물겹기까지 했던 오후였는데...

 

 

 

돌아와 들었던 뜻하지 않은 비보 탓에 며칠 심란했습니다.

그 다음 날... 심란한 마음들 추스리느라 친구들이 왔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혹은 며칠 전까지 아무 일도 없는 날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모두들 입을 모았습니다.

 

비 오는 날입니다. 시간은 주춤주춤 지나가고 맞닥뜨려야 할 일들 또한 주춤주춤 다가오는 것이지요. 그것이  기쁨이든 고통이든... 때로는 죽음까지도...

비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 살아내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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