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 준다고 파우치 하나 만들었는데 그만 다시 바느질에 발동이 걸렸습니다.
하여 벌써 카드 지갑 하나 만들고 컨츄리 지갑 하나 만들었지요. 지갑에 맞는 프레임이 없어서 좀 있다 동대문 시장엘 갈 생각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코스프레를 열심히 하다가 그만 옷 만드는데 취미가 붙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런 식으로 공부했으면 전교 일등 했을 거라고 내가 매일 놀립니다. 뭐 사실 공부 1등이나 옷 만드는 거 1등이나 다를 건 없는데 이노무 세상이 인정을 안 해 주는 것이지요. 갸가 지난 번에 수업하러 와서는 선생님, 토요일에 동대문 시장 같이 가 주세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께요~~ 하고 사정을 하길레 어림 없다. 내가 볼 일 없는데 학생이 공부하는 대신 옷 만든다고 지퍼 사러 가는데 쭐레쭐레 따라갈 수는 없지 않겠냐고 거절을 했드만... ㅋㅋ. -사실 예전에 한 번 같이 가 준 적이 있다- 아마 신은 갸 편이었던 모양입니다. 갸 소원대로 됐으니 말입니다. 나는 종종 얘야, 어떤 것이든 간절히 사심없이 바라면 이루어진단다... 하고 말해주는데 아마 얘가 정말 간절이 빌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않고서야 느닷없이 바느질에 발동이 걸렸을 리도 없고 하필 프레임이 다른 싸이즈는 다아 있는데 이미 만들어 놓은 지갑의 12Cm짜리만 없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공부는 못-??-하지만 다른 건 나무랄 데 없는 심성 반듯하고 순진하고 고지식한 녀석입니다. 자매가 온 지 2년 차고 갸 혼자 다닌 지는 벌써 5년 째입니다. 이전에 내가 얻은 오래 된 미싱을 빌려줬는데 그걸 얼마나 침을 흘리는지... 고등학생만 아니면 너 가져라~~ 했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나중에 굉장히 성공할 씨앗을 품고 있는 아이지요.
현관문 윗쪽의 벽에 걸 발란스도 이미 재단해뒀고-이건 예전에 만들었는데 영미가 와서 이쁘다고 하길레 떼어 줬다.- 컨츄리 지갑도 다시 한 번 만들어 보고 실실 조물딱 조물딱 해봐야겠습니다.
날씨는 환장하게 좋은 토요일입니다.
가을 바람만 불면 그저 살아 숨 쉬는게 행복한 인간인 나는 매일매일이 살만한 세상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잠자기 전에 내일은 김밥을 싸서 청계산을 가볼까? 양재천을 가볼까? 시장을 봐다가 꼼꼼하게 비빔밥거리 나물을 만들까? 아니면 칼국수를 밀어? 남대문 시장으로 해서 남산엘 올라볼까? 아니면 서울 대공원 뒷산으로 등산을 가볼까? 아니면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아무데나 먼 곳으로 가는 버스 타고 훌쩍 떠날까?
뭐 매일매일 이렇게 설레는 아침입니다.-이건 순전히 장 안 좋아서 한동안 문 닫아야겠다고 결심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한 것은 하나도 없고 일주일 동안 거의 꼼짝도 안 했습니다. 먹는 것은 그저 된장찌개 끓여서 열무김치랑 먹은 거 외엔 없습니다. 냉장고는 텅~ 비었습니다.
언젠간 김밥을 말아 대공원 가서도 먹고 오고 쳥계산 가서도 먹고 오고야 말 것입니다. ㅋㅋ. 계란 두껍게 부치고 단무지도 두툼하게... -식초와 설탕을 탄 물에 담갔다가 넣으면 훨씬 맛있다- 소세지랑 당근도 볶고 시금치는 데치고 오이는 소금에 절였다가 파랗게 볶고, 흠.... 기분 내키면 우엉조림도 해서 넣고 말입니다. 밥은 불린 쌀로 꼬들하지만 촉촉하게 지어 소금 참기름 식용유 약간, 식초 넣고 버무리고... 그리곤 꾹꾹 눌러 말면 됩니다. 예전에 이래뵈도 맛있는 김밥 만들기로 유명했었는데... ^^;;
지금은 그저 맛있게 만들어 놓은 거 사갖고 가면 되지만 이상하게 나는 '집'에서 만드는 김밥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하여 찬합이나 도시락에 담긴 김밥만 보면 어릴 때가 떠올라 행복해지는데 그것은 아마, 그 때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지금은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소세지부침, 볶은 김치, 계란말이 이렇게 세 가지 반찬과 함께 싼 흰밥도 좋지요. -으~ 땡긴다- 사실 입맛은 별로인데 꼬물꼬물 이것저것 만들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생깁니다. 산에 안 간 지도 오래 됐구요.
며칠 좋은 날씨에 햇빛도 아까워서 내의랑 수건 삶아서 널고 이불도 널고 고양이 집도 햇빛에 말렸습니다.
이렇게 그저 평화롭고 감사한 가을 날이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