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자주 하시는 것이라 덤덤해 했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못고친댄다, 잘됐지?"
싸가지 없는 나
"그걸 이제 처음 아신건 아니잖아요"
국민카드사에서 하는 사이버 문학상에 글을 올렸습니다.
전문입니다.
엊그제 시장에 들렀다가, 한 두름에 만 원하는 굴비를 사 왔습니다. 세 마리를 구워 먹어야, 큰 것 한 마리 먹은 폭이 될 만큼 아주 자잘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손질하다가 그만 등지느러미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지요. 꼴에 갖출건 다 갖추었더군요.
엄지손가락이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저를 미신의 여왕이라고 놀릴 만큼, 수많은 징크스를 갖고 있는 저에게 퍼뜩 떠오른 것은 아부지였습니다.
"또 병원에 입원하신 모양이구나"
그러나 저는 집에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는 벌써 삼 년 넘게 병원을 안방 드나들듯이 다니셨고, 일년의 반 넘게 병원에서 사셨습니다.
처음엔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우리 자식들은 달려갔었지요.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지금은 입원하셨다고 하면 또 왜 그러시는데요?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게 됩니다. 습관과 타성의 무서운 점이겠지요.
저는, 아부지의 병이 새로운 것이 아닌 젊을 때 앓으신 폐결핵 후유증이라는 것이 밝혀지고는 늘 그랬습니다.
아부지. 환자연 하지 마시라구요. 조금씩 일어나 운동도 하시고, 약 먹는 것도 줄이고, 아버지는 폐가 망가져서 호흡이 어려울 뿐이니까, 만약 그렇게 누워 계시면, 다른 기능까지 망가지는 거예요...그러니 엄마, 아부지한테 너무 잘 해드리지 말아요. 그건 낫게 하는게 아니라 더 나빠지게 하는거예요. 병뚜껑도 아부지 손으로 따게 하세요, 손이 아프신 것두 아닌데...
그러면 아부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지요. 니가 딸년 맞냐구...
저는 지금도 제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전혀 아무런 가책도 없습니다. 모두 맞는 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아부지를 위해서 그랬냐고 물으시면, 일초도 생각 안하고 그렇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속에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부지가 싫었기 때문이고, 어린아이처럼 아픈 것에 대해 유세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부지는 평생 해놓은 게 없으십니다.
아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해 놓은게 없는 아버지들이 많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런 해 놓은 게 없는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홀대를 받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화가 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보아온 아부지의 불성실과 이기심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부지는 그러십니다. 자식들이 싸가지가 없다고...효자들이 아니라고...다른 집 자식들 부모한테 하는 것들 보라고...
자식이 병든 부모를 보살피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그보다 앞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효도가 도덕적인 것이라면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인간은 본능이 앞서는 것이 아닐는지...
하지만 아부지는 웬지 자식에 앞서 항상 당신 생각을 먼저 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엄마가 하루 열두시간씩 노동해서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빚쟁이가 가지고 가던 모습을요. 지독하기로 소문난, 그 채권자 할아버지는 엄마가 퇴근하시는 밤 열한시까지 기다렸다가, 월급봉투를 고스란히 가져갔지요. 그 빚은 물론 아부지가 진 것이었죠.
그처럼 엄마는 평생을 아부지 당신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사셨습니다. 그에 반해 아부지는 엄마에게 무엇을 남길 것이며, 무엇을 해 주셨는지......
가끔 반은 장난이고 반은 진심으로 그런 옛날 이야기를 꺼내면 아부지는 눈빚까지 달라지시며 화를 내십니다. 이미 지난 일이라구... 지금은 안그러지 않냐구...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러시질 못하시죠. 병든 몸이신걸요...
딸에게 있어 아버지는 첫번째 남자입니다. 아버지를 보며 남자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보아온 아부지의 모습은...
외디푸스 컴플렉스니 엘렉트라 컴플렉스니 하는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도 아들 보다는, 딸이 아버지와 훨씬 가깝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아부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인 저를 아들들 보다는 귀여워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딸은 자라면 엄마 편이 됩니다. 같은 여자라는 동료의식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연민은, 아부지를 졸지에 엄마의 삶을 망가뜨린 가해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슬픕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지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인 제가 엄마를 닮을 수 밖에 없다면, 결과는 자명하겠지요. 핑계같지만 제가 불혹을 코앞에 둔 나이까지 결혼이란걸 생각 안하고 산 건 아마 그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부지 같은 남자 만나 지지리 궁상으로 살면 아부진 어떤 생각이 드시겠어요?"
아마 용돈을 빨리 안 준다고 우리 오남매를 일렬 횡대로 앉혀놓고 호통을 치시다가 싸움이 붙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부지는 그런걸로 자식들에게 대우받고 싶어하셨지요.
참다못해 제가 대들면서 했던 말에,
"그것두 니 팔자여"
저는 아부지의 그 이기심이 정말 싫었습니다. 항상 일을 저지르기만 하시고 엄마는 평생을 그것을 수습하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회복할 수 없는 당신의 병든 몸까지 말입니다.
딸로서,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본 엄마의 신산한 삶은 누가 뭐라든 아부지 당신 탓이었습니다. 지금 병들어 고생하신다고 그 책임마저 없어지거나 잊혀지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아부지는 그 모든 것을 잊기를, 잊혀지기를, 아니 잊혀졌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부진 여전히 엄마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아부지는 엄마의 고생은 당연한 것으로 -적어도 제 눈엔 그렇게 보입니다-여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부지에 대한 엄마의 간호는 그야말로 극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모르는 부부간의 정리인지, 아니면 엄마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애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아부지... 아부지는 사랑하지만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존경이 이성이고 사랑이 본능이라면, 결국 본능이 앞서는 것이 인간인 탓에 아부지, 당신이 어찌하셨든 아픈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자식으로서의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처음 몸이 아프시고는 이유없이 울거나, 잔소리꾼이 되시는 것도 싫었고, 괜히 억지를 쓰시는 것도 싫었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환자들의 일반적인 속성인 것을 알았지만, 그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차라리 옛날의 약간은 뻔뻔한 아부지가 더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아부지는 지금도 여전히 당당하십니다.
아니, 당당한 척을 하고 계신 것인가요? 어느 때부터인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부지의 그 까닭모를 당당함에 스며있는 한없는 죄책감을 읽었다면 지나친 건방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아부지, 당신이 가끔 자식들에게 부리는 억지에서, 젊은 날에 대한 몸둘 바 모르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포장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아부지에게 또 화가 납니다.
망설이다가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부지는 병원에 가셨더군요. 이러다가는 무당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가 어떠신데요?"
삐딱한 질문에
"숨이 차서 왔다."
"숨은 언제나 찬데 집에서 좀 버텨 보시죠. 그래야 조금씩 나아지잖아요."
거기까지 듣고 아부지는 대뜸 전화기를 엄마한테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부지... 고백하자면 전 두렵습니다.
아부지가 그렇게 오랫동안 한없이 앓기만 하시다가, 끝내는 자식들에게조차 귀찮은 존재가 되고, 지친 엄마까지 마음으로나마 등을 돌리는 일이 일어날까봐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년으로써 이렇게 모진 맘을 가지고 있고, 가끔 모진 말로 아부지 당신 가슴에 못을 박고는 그것을 뺄 겨를도 없이 돌아가시게 될까봐 말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엄마한테는 아부지가 그렇게 아픈 몸이라도 살아 계신 것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아는걸요...아부지...
언젠가 아부지와 말다툼이 격해져서 아부지한테 한번 맞은 적이 있었지요. 고백하자면, 그때 저를 때리셨던 아부지의 팔에 힘이 하나도 하나도 하나도 하나도 없어서 얼마나 놀라고 슬펐는지 모릅니다.
"더 이상 아부지는 옛날의 아부지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래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아부지는 병주고 약주고 한다고 화를 내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까지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며, 싸울 수-?-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아부지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똑똑한 딸인걸요. 그리고 요즈음엔 제가 하는 말마다 잘난척에 건방이라고 쌍심지를 켜고 나무라십니다. 그러나 아부지가 제가 하는 말마다 쌍심지를 켜고 화를 내시는 이상, 아부지는 그렇게 쉽게 돌아가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싸울랍니다. 그러니 아부지...기운 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울 아부지 불쌍해서 어쩌지하는 마음이 자꾸 들면, 그때는 아부지가 정말 돌아가실 때가 된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 안들기를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저, 예감과 미신과 징크스의 여왕인걸요
"못고친댄다, 잘됐지?"
싸가지 없는 나
"그걸 이제 처음 아신건 아니잖아요"
국민카드사에서 하는 사이버 문학상에 글을 올렸습니다.
전문입니다.
엊그제 시장에 들렀다가, 한 두름에 만 원하는 굴비를 사 왔습니다. 세 마리를 구워 먹어야, 큰 것 한 마리 먹은 폭이 될 만큼 아주 자잘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손질하다가 그만 등지느러미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지요. 꼴에 갖출건 다 갖추었더군요.
엄지손가락이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저를 미신의 여왕이라고 놀릴 만큼, 수많은 징크스를 갖고 있는 저에게 퍼뜩 떠오른 것은 아부지였습니다.
"또 병원에 입원하신 모양이구나"
그러나 저는 집에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는 벌써 삼 년 넘게 병원을 안방 드나들듯이 다니셨고, 일년의 반 넘게 병원에서 사셨습니다.
처음엔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우리 자식들은 달려갔었지요.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지금은 입원하셨다고 하면 또 왜 그러시는데요?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게 됩니다. 습관과 타성의 무서운 점이겠지요.
저는, 아부지의 병이 새로운 것이 아닌 젊을 때 앓으신 폐결핵 후유증이라는 것이 밝혀지고는 늘 그랬습니다.
아부지. 환자연 하지 마시라구요. 조금씩 일어나 운동도 하시고, 약 먹는 것도 줄이고, 아버지는 폐가 망가져서 호흡이 어려울 뿐이니까, 만약 그렇게 누워 계시면, 다른 기능까지 망가지는 거예요...그러니 엄마, 아부지한테 너무 잘 해드리지 말아요. 그건 낫게 하는게 아니라 더 나빠지게 하는거예요. 병뚜껑도 아부지 손으로 따게 하세요, 손이 아프신 것두 아닌데...
그러면 아부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지요. 니가 딸년 맞냐구...
저는 지금도 제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전혀 아무런 가책도 없습니다. 모두 맞는 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아부지를 위해서 그랬냐고 물으시면, 일초도 생각 안하고 그렇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속에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부지가 싫었기 때문이고, 어린아이처럼 아픈 것에 대해 유세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부지는 평생 해놓은 게 없으십니다.
아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해 놓은게 없는 아버지들이 많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런 해 놓은 게 없는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홀대를 받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화가 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보아온 아부지의 불성실과 이기심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부지는 그러십니다. 자식들이 싸가지가 없다고...효자들이 아니라고...다른 집 자식들 부모한테 하는 것들 보라고...
자식이 병든 부모를 보살피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그보다 앞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효도가 도덕적인 것이라면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인간은 본능이 앞서는 것이 아닐는지...
하지만 아부지는 웬지 자식에 앞서 항상 당신 생각을 먼저 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엄마가 하루 열두시간씩 노동해서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빚쟁이가 가지고 가던 모습을요. 지독하기로 소문난, 그 채권자 할아버지는 엄마가 퇴근하시는 밤 열한시까지 기다렸다가, 월급봉투를 고스란히 가져갔지요. 그 빚은 물론 아부지가 진 것이었죠.
그처럼 엄마는 평생을 아부지 당신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사셨습니다. 그에 반해 아부지는 엄마에게 무엇을 남길 것이며, 무엇을 해 주셨는지......
가끔 반은 장난이고 반은 진심으로 그런 옛날 이야기를 꺼내면 아부지는 눈빚까지 달라지시며 화를 내십니다. 이미 지난 일이라구... 지금은 안그러지 않냐구...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러시질 못하시죠. 병든 몸이신걸요...
딸에게 있어 아버지는 첫번째 남자입니다. 아버지를 보며 남자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보아온 아부지의 모습은...
외디푸스 컴플렉스니 엘렉트라 컴플렉스니 하는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도 아들 보다는, 딸이 아버지와 훨씬 가깝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아부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인 저를 아들들 보다는 귀여워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딸은 자라면 엄마 편이 됩니다. 같은 여자라는 동료의식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연민은, 아부지를 졸지에 엄마의 삶을 망가뜨린 가해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슬픕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지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인 제가 엄마를 닮을 수 밖에 없다면, 결과는 자명하겠지요. 핑계같지만 제가 불혹을 코앞에 둔 나이까지 결혼이란걸 생각 안하고 산 건 아마 그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부지 같은 남자 만나 지지리 궁상으로 살면 아부진 어떤 생각이 드시겠어요?"
아마 용돈을 빨리 안 준다고 우리 오남매를 일렬 횡대로 앉혀놓고 호통을 치시다가 싸움이 붙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부지는 그런걸로 자식들에게 대우받고 싶어하셨지요.
참다못해 제가 대들면서 했던 말에,
"그것두 니 팔자여"
저는 아부지의 그 이기심이 정말 싫었습니다. 항상 일을 저지르기만 하시고 엄마는 평생을 그것을 수습하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회복할 수 없는 당신의 병든 몸까지 말입니다.
딸로서,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본 엄마의 신산한 삶은 누가 뭐라든 아부지 당신 탓이었습니다. 지금 병들어 고생하신다고 그 책임마저 없어지거나 잊혀지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아부지는 그 모든 것을 잊기를, 잊혀지기를, 아니 잊혀졌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부진 여전히 엄마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아부지는 엄마의 고생은 당연한 것으로 -적어도 제 눈엔 그렇게 보입니다-여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부지에 대한 엄마의 간호는 그야말로 극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모르는 부부간의 정리인지, 아니면 엄마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애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아부지... 아부지는 사랑하지만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존경이 이성이고 사랑이 본능이라면, 결국 본능이 앞서는 것이 인간인 탓에 아부지, 당신이 어찌하셨든 아픈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자식으로서의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처음 몸이 아프시고는 이유없이 울거나, 잔소리꾼이 되시는 것도 싫었고, 괜히 억지를 쓰시는 것도 싫었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환자들의 일반적인 속성인 것을 알았지만, 그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차라리 옛날의 약간은 뻔뻔한 아부지가 더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아부지는 지금도 여전히 당당하십니다.
아니, 당당한 척을 하고 계신 것인가요? 어느 때부터인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부지의 그 까닭모를 당당함에 스며있는 한없는 죄책감을 읽었다면 지나친 건방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아부지, 당신이 가끔 자식들에게 부리는 억지에서, 젊은 날에 대한 몸둘 바 모르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포장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아부지에게 또 화가 납니다.
망설이다가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부지는 병원에 가셨더군요. 이러다가는 무당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가 어떠신데요?"
삐딱한 질문에
"숨이 차서 왔다."
"숨은 언제나 찬데 집에서 좀 버텨 보시죠. 그래야 조금씩 나아지잖아요."
거기까지 듣고 아부지는 대뜸 전화기를 엄마한테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부지... 고백하자면 전 두렵습니다.
아부지가 그렇게 오랫동안 한없이 앓기만 하시다가, 끝내는 자식들에게조차 귀찮은 존재가 되고, 지친 엄마까지 마음으로나마 등을 돌리는 일이 일어날까봐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년으로써 이렇게 모진 맘을 가지고 있고, 가끔 모진 말로 아부지 당신 가슴에 못을 박고는 그것을 뺄 겨를도 없이 돌아가시게 될까봐 말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엄마한테는 아부지가 그렇게 아픈 몸이라도 살아 계신 것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아는걸요...아부지...
언젠가 아부지와 말다툼이 격해져서 아부지한테 한번 맞은 적이 있었지요. 고백하자면, 그때 저를 때리셨던 아부지의 팔에 힘이 하나도 하나도 하나도 하나도 없어서 얼마나 놀라고 슬펐는지 모릅니다.
"더 이상 아부지는 옛날의 아부지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래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아부지는 병주고 약주고 한다고 화를 내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까지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며, 싸울 수-?-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아부지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똑똑한 딸인걸요. 그리고 요즈음엔 제가 하는 말마다 잘난척에 건방이라고 쌍심지를 켜고 나무라십니다. 그러나 아부지가 제가 하는 말마다 쌍심지를 켜고 화를 내시는 이상, 아부지는 그렇게 쉽게 돌아가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싸울랍니다. 그러니 아부지...기운 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울 아부지 불쌍해서 어쩌지하는 마음이 자꾸 들면, 그때는 아부지가 정말 돌아가실 때가 된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 안들기를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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