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 날...

이런!!!

오애도 2006. 2. 8. 23:32

아침 일찍 늘 만나는 친구들 만나서 신나게 떠들고 하하호호 즐거웠다. 시간 맞춰 수업하러 부랴부랴 꽝꽝 얼어붙은 길을 걸어서 첫탕을 뛰고 다음 탕은 집에서 하는 수업이다.

오늘따라 알라들은 책을 어찌나 열심히 읽어왔는지 신나게 지들끼리 토론하고 퀴즈내고 어쩌구 했다.

'선생님 눈도 왔는데 삼십분 쯤 놀게 해주세요~~'

'안돼. 위험해'

'선생니임~~~'

'그럼 수업 끝나고 삼십분만 놀아라' 하는데 예감이 좀 심상찮았다.

노는 녀석들 추울까봐 편의점에서 라면 사주려고 나가는데 헐레벌떡 아이 하나가 뛰어왔다.

'욱진이가 다쳤어요~'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

안그래도 할머니와 같이 사는 아이라 유난히 걱정이 많다는 얘길 얼마 전에 들었었다.

'이런...'

뛰어나갔더니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입술이 터지고 앞니가 삼분의 이쯤이 부러졌다.

'맙소사!!'

간신히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아이 어머니가 와서 아일 데리고 갔다.

 

돌이켜보니 오랫동안-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크게 사고 나거나 나쁜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지만 그것도 알고 보믄 감사할 일이다.

오래 전에 아이큐가 70쯤 되는 아이를 맡아서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아이 맡고 난 후 학교에 가 엄마대신 담임 선생님과 상담했고 아이 친구들 햄버거집에 데려가서 먹을거 사주며 아이를 부탁했다. 영화도 보러가고 연극도 보러 다니고 여행도 함께 다녔었다. 아홉 살 부터 열 세 살이 될때까지였는데, 여차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고, 여차하면 사라지기 일쑤였고, 게다가 여차하면 앓았었다. 어느 날은 하도 심하게 앓길래 다 늦게 그아이 업고 내맘대로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뛰었다. 동네 병원엘 가면 감기라는 진단만 떨어지고 약먹으면 나았다가 다시 아프곤 했다.

결과는 소변 역류로 인한 신우신염이었고 신장 하나는 이미 망가졌고 나머지 신장도 더 늦었으면 쓸 수 없게 되었을 거라고 했다. 아이는 수술을 해서 나았고 나는 졸지에 생명의 은인이 됐다. 뭐 신장이 망가졌다고 생명에 당장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만성 신부전증 환자로 어린 나이에 투석해가며 나머지 삶을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때 종종 사람들한테 혹시 특수교육 전공했냐는 소릴 듣고는 했다. ^^;; 그 아이 엄마는 헬렌 켈러의 설리반 선생과 비견된다고도 했었다. ^^;;-심히 민망^^;;;-

하지만 고백하자면 그 아일 보면 그 애 어머니의 신앙의 힘을 느끼게 한다. 나는 신앙은 없지만 신앙의 힘은 믿는데 그게 어떤 신앙이든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그 후 캐나다로 건너가 성인이 되어 살고 있다. 지금도 스티븐 스필버그영화 이런 걸 보면 오선생님 드린다고 챙겨놨다가 갖고 오기도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일곱음절짜리 이름을 가르치느라 반나절을 꼬박 소비했었다.-

 

나는 종종 가르치면서 생각한다. 내가 직업적으로만 이 아이들을 대하는 건 아닌가?

하여 종종 알라들한테 묻는다. 내가 너희들한테 돈 벌기 위해 가르치는 걸로 보이냐?? -사실 이건 물으나마나 한 소리다- 당연히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모르겠다.

어쨌거나 적어도 한 가지는 한치의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 잘하든 못하든 나는 그 아이들에게 내마음을 다 한다는 것...

 

아까 있었던 물리적인 사고야 내 능력 밖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겟지만 주술적인 인간인 나도, 끝나고 바로 보냈더라면... 라면 사주러 오분만 더 일찍 나갔더라면.... 선생님도 같이 놀아요 할 때 같이 나갔더라면... 아니 애초에 수업만 하고 따뜻한 핫초코나 멕여 보냈더라면...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삶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새벽 꿈에 아이 가르치러 갔다가 창문을 넘어 가야 되는데 창문이 너무 좁아 넘어가지 못하는 꿈을 꾸었다. 창문을 넘기로 시도하다가 어쩌자고 그 아이집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이런!! 민망하게 아랫도리를 벗은 채였다. 깨고 나서 황당!!  꿈속의 아이 이름은 ㅈㅇ이었고, 다친 아이는 ㅇㅈ이었다. ㅎㅎ. 수업하다가 ㅈㅇ한테 꿈얘기를 하면서 킬킬 거렸었다.

해석해 보믄 뻔하다. 아랫사람 땜에 근심할 일... 저녁때까지 아무일 없길래 허몽인 줄 알았다. 무섭다.

 

 

사족: 나는 내가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안다.

       만약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믄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느라 종국에는 스스로 지쳐 황폐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건 최고의 미덕이자 최고의 악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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