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가을날 아침에...

오애도 2002. 9. 18. 13:00
열흘 전 쯤에 아는 사람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의 주인아주머니입니다.
50대 중반을 넘기신 그 분은 오랫동안 앓아오셨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이 저렇게 마를 수도 있나 싶게 꼬챙이처럼 말라서 무섭게 느껴지기까
지 했었습니다. 지은 지 오래되고, 무서우리만치 넓고 음산한 집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7년
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함께 사는 동안 두 딸이 결혼을 했고, 큰아들이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
가 커가는 것을 봤었습니다. 금방 낳았을 때 꼬물거리던 모습부터 보았던 -아니 뱃속에 있
을 때부터 알았던-그 아이는 지금 전화를 하면 왕이모하고 부릅니다. 중학생이었던 막내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고 첫 휴가 두 번 째 휴가까지 나오는 것까지 보고, 서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헤어졌었습니다. 이사 간 후에도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찾아가기도 했었
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명한 기억은 아저씨의 외도로 인한 한없는 마음쓰임과 머리 복잡함을
결혼도 안 한 날 붙잡고 한없이 한없이 하던 그분의 모습이었습니다.
완벽한 타인의 입장에서 한 가정의 일들을 그렇게 소상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쨋거나 울 아부지와 같은 병을 앓으셨던 그 분은 울아부지보다 먼저 산소 호흡기를 끼셨
고, 그야말로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울 아부지의 안부를 물어오셨습
니다. 그리고 올 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참 심란해 하셨다고 했습니다.

한밤중 터덜터덜 산책을 하다가 이동전화기를 통해 들었던 죽음의 소식은 그리하여 가슴 한
구석을 묵직하게 눌러왔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과는 다른 가슴아픔이자 슬픔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제는 조금씩 그렇게 익숙하고 낯익은 사람들과의 이별과 자주 맞닥뜨리
게 될지도 모른다는 쓸쓸한 자각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일 먹고, 그와 함께 나보다 조금씩 앞 선 세월을 산 사람들의 떠나감을
볼 수밖에 없겠지요. 그걸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으리라는 쓸쓸한 예감이 적막하게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며칠 우울해 했었습니다.

오늘 낮에, 나보다 한참 어린 그 집 며느리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 집에 살 때 큰아들이 대학생이었는데, 같은 학생의 신분으로 어찌어찌하여 임신을 하고,
아일 낳고, 결혼식을 올리고, 병드신 시어머니 수발을 했던 그녀는 그래도 그 집에 시집와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나를 만난 것이라고 합니다. ^^;;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녀는 두번 째 아이를 임신중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가고 오는 것!!

만나서 그 분 얘기나 하고 와야겠습니다.

어쨋거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
고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