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혈병 투병기

퇴원...머리를 밀다!!

오애도 2017. 10. 15. 16:12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암투병 중인 사촌동생이 함께 있자고 잡아 놓은 요양병원으로 가는 대신 집으로 와야할 것 같아서 일단 집으로 왔습니다.

 똘똘이 덕에 엉망진창이 된 방안에 짐을 들여놓고 치워주겠다는 올케언니를 굳이 등 떠밀어 보내 놓고 하나하나 병원에서의 짐을 풀었습니다.

도처에 말라 붙은 똘똘이의 토사물에 물을 뿌려놓고 기다렸다가 살살 휴지로 닦아냈습니다.

중간중간 환자인 척 의자에 앉아 쉬었다가 다시 닦아내고... 마침 전화 온 친구에게 얘기했다가 당장에 그만두고 갈 데 마땅찮으면 병원 가기 전 자기 집에서 일주일만 와 있으라고 했습니다.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얘기하고는 문득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모자 벗은 머리 꼴이 흉해서 털털 내려가 바로 옆에 있는 미장원에서 머릴 밀었습니다.

뭐 애초에... 암치로 하면 머리 빠지는 건 당연하니까 그것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나 걱정이나 이런 거 1 도 없었고 없다고 장담했는데... 그런데 머리를 미는데 드러나는 두피가 그만 얼마나 새하얗던지 그 삶은 달걀 흰자 같은 색깔이 문득 서러워서 눈물이 솟더군요. 하하.

다아 밀고는 터덜터덜 올라와 집에 있던 비니를 쓰기 전 거울을 보니 새하얀 머리통과 정말로 아기 머리통만큼밖에 안되는 크기의 말갛고 동글동글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니를 쓰고 나서 비로소 처음으로 오랫동안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꺼이꺼이 꺽꺽했습니다.

병에 대한 공포도 스스로에 대한 서러움도 삶에 대한 원망도 존재에 대한 외로움도 아닌 정말 뼛속까지 저며오는 근원적인 고독감 때문이었습니다.  

...외로움은 고독감과 다르겠지요.

아프면서 나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하지만 그 민머리를 보면서 느꼈던 순간적인 감정은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고독이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하지만...

나는 명랑한 백혈병 환자였고 유쾌한 병실 환자였고 중심정맥관 수술 실밥 뽑을 때 하도 아파서, 다음에도 그렇게 아프게 하면 정말로  목 조를 거예요... 하면서 드립을 치는 웃기는 환자였습니다.


 

투 비 컨티뉴~

'나의 백혈병 투병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의 시작...  (0) 2017.11.01
고마워...  (0) 2017.10.26
ATRA 부작용을 검색하다가...  (0) 2017.10.22
어째...  (0) 2017.10.20
무리...  (0) 2017.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