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시간 전에 수제비 반죽을 찰지게 해서 냉장고에 넣어놨었습니다.
그리고는 냉동실을 열어보니 국물용 멸치 서너 마리랑 멸치 부스러기만 남았길레 멸치똥을 발라내고 마른 새우랑 다시마를 넣어 폭폭 국물을 냈습니다. 그리고는 깨끗이 걸러낸 후 감자 하나를 깎아 뚜꺽뚜꺽 썰어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서 수제비를 하안 냄비 끓였습니다. 그리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지요.
오늘의 제대로 된 첫 끼니입니다. 삶의 의욕과 식욕은 비례한다고 믿는데 확실히 맞는 말입니다.
이것저것 의욕이 없으니까 식욕도 영 별로였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다보니 -이전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댄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난 왜 이다지 복이 많아 일케 널럴하게 살까에 대해 감사만 가득했었다. - 문득 스스로가 짐승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돈을 벌고 안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빈둥대며 사는 게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과 반성이 끝도 없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즐겨 하던 바느질도 책읽기도 죄 시들해졌습니다. 나가서 돌아다니는 일도 당최 맘이 안 땡기고 말이지요. 그래도 꽤 많이 날이면 날마다 사람들과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구석에 고인 물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촌언니가 내꼴을-??- 보더니 니가 쉰 살을 앓는구나... 하더군요. 나도 그랬거든.. 하면서 말이지요. 증세를 들어보니 지금의 내 상태와 비슷합니다.
갑자기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것 같고 해놓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느닷없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미래에 대한 걱정은 물론이고 지금 살고 있는 꼬락서니도 한심하고...
그래도 그게 '쉰앓이'라는 병명을 듣고 나니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사춘기가 어쩔 수없는 것처럼 이렇게 사추기나 갱년기나 쉰앓이도 지나가겠지요.
어쩌면 나란 인간이 멍청하리만치 긍정적으로 살아온 모양입니다. 한 번도 미래가 불안한 적 없다보니 에헤라디야~~하고 살았던 것이지요. 뭐 눈곱만큼도 후회는 안 하지만 반성은 합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세상에 미안하다는...
자아성찰이 수반되는 고뇌가 아니면 그건 진정한 고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것이고 깊은 골을 벗어나면 높은 산에 올라 있겠지요. 자~ 으쌰!! 기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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