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으로 운동을 가기로 해 놓고 육계장을 끓이고 있습니다.
며칠 째 지폐라고는 한 장도 없이 지내다가-집에 있으면 좋은 점은 일케 돈이 없어도 살만하다는 것- 은행에 돈 찾으러 일부러 나갔다가 미역국 끓일 요량으로 영계 한 마리를 사왔더랬지요. 북한산 말린 고사리도 두 뭉치나 사왔구요. 고사리 삶다가 미역국이 그만 그야말로 육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생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뜯어먹고 산 백이 숙제도 아닌데 나는 고사리가 참 좋습니다. 뭐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사실 암 걸릴 만큼 먹으려면 일년에 한 트럭 정도는 먹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ㅋ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음식 냄새는 사실 어떤 난방장치보다도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하여 어느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이 어딘가 모르게 썰렁하다는 느낌이 들면 필경 집에서 음식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경우일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 울엄니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넣을 때를 그 어떤 풍경보다도 따뜻한 풍경으로 기억합니다. 괜히 나는 울엄니 옆에 앉아서 밥이 끓어 넘치기를 기다렸지요. 그럼 잠시 뚜껑을 밀었다 다시 닫고 엄니는 곤로-라고 불리는- 위에 찌개거리를 안치곤 했습니다. 아마 배가 고파서였을 것입니다.
좁고 허름하지만 어두컴컴한 골목을 지나는데 어느 집에선가 된장찌개며 김치찌개 따위의 냄새가 풍기면 어딘가 세상은 참 그림같은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재천은 오늘로 사흘 째입니다.
무엇이든 사흘을 넘기면 쭉 이어하기는 쉽지요.
첫날은 한참만의 운동이라 온몸이 제법 힘들다고 시위를 하더군요. 다시 산에 가기 위한 웜업운동인 셈이지요. 무거운 몸 이끌고 혼자서 두 시간 쯤 걸어도 심심하지도 따분하지도 지겹지도 않은 게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것 조차 혼자 못하는 사람은 홀로 살 자격이 없다... 고 감히 생각한다는... ㅋ.
'나'와 걸을 줄 모르고 '나'와 대화할 줄 모르면 홀로 살 때의 '나'가 너무 불쌍할테니 말입니다.
육계장이 다 됐습니다. 불 끄고 실실 나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