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신입생에 관한 소고

오애도 2009. 8. 31. 10:56

눈부시게 맑은 월요일 아침...

어제 열 한 시간 다이렉트로 수업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의외로 목이 괘않다. 일어나서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안 하고 할 필요도 없다.

 

아이 넷이 어제 새로 오기로 했었다.

남자아이 둘, 여자 아이 둘... 둘씩 서로 친구관계...

그렇게 묶어서 팀이 좋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여자 아이들이 안 오겠다고 해서 그만 남자 아이 둘이 수업을 했었다. 기존에 하고 있던 아이들한테 그 아이들에 대해 물어보니-학교가 같은 일곱명의 아이들...- 꽤  유명하단다.

 선생님 받지 마세요~~

왜? 이상한 눔이냐?

그럼요. 선생님한테 개기고 말 안듣고 애들 패고... 그런데 엄마 앞에서는 천사인척 해요.

흠... 그렇다고 공부시키겠다고 엄마가 전화 하셨는데 뭐라고 하면서 안하겠냐? 걱정 말그라. 원래 일진, 개날라리 열 명이상 거느리고 있었느니라. ㅋㅋㅋㅋ

 우리 반에는 절대 안 돼요~

 그럴 생각 없다.

 

하여 두 명이 새로 시작을 했는데 역시나 그동안 하던 아이들과는 성향이 좀 달랐다. 그 성향이라는 게 사실 근본적인 인성이라기보다는 중학교 들어가 한 학기 지나고 나면 오는, 그리고 사춘기의 질풍노도적인-??- 감정의 기복과 그로 인해 주위 여기저기에서 받는 압박때문에 다분히 비틀린 행동방식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사실 기존의 아이들은 신입생 되자마자, 혹은 초딩 시절부터 하던 아이들이다. 그래서 중학 일학년의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모습부터 보아온 터라 지금 쯤 나오는 비틀린 행동방식이 결코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다 이미 서로 길들여져 감히-??- 내게는 함부로 서툰 치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쨌거나 처음 수업시간에 삐딱하게 앉고 눈맞춤도 못-?-하는 녀셕을 손금 봐 주는 걸 시작으로 슬슬 건드렸다. 처음엔 당연히 '나'를 모르니 제법 파닥였지만 결국 나갈 때 쯤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몇마디 말 섞고 한마디...

와!!! 강적이다. 

 아그야. 웬만하믄 나하고 말싸움 하지 마라. 결코 날 이길 수 없거든. 왜냐하면 니가 옳은 것에는 시비 거는 내가 아니고,  아무리 선생님이고 어른이지만 잘 모르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니가 아무리 어린애라도 함부로 우기지 않는단다.  하여 고집을 위한 고집,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기 위해 선생님한테 뎀비지 말그라...

 

그 아이 손톱을 보니... 다섯 개의 손톱들이 하나같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 하도 뜯어 먹어서...

그걸 보면서 나는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왜 친구들한테 그런 인상을 주게 됐는지를 단 번에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요즘 아이들을 망치고 정서 불안하게 하는 것은 거의 다 부모들이다. 좋다는 학원에 강제로 보내고 집에서 컴퓨터를 치우고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아이가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불쑥 안방문은 열어보고-그렇게 불쑥 열어보는 녀석도 처음이었다- 여기 저기 들여다 보더니 여기서 이렇게 혼자 살면 정말 좋겠다... 고 혼자 중얼거린다. 혼자서 책보고 컴퓨터 하루종일 하고 테레비도 하루종일 보고...

 

그소리를 들으며 열 네살짜리 남자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고뇌의 깊이를 짐작한다. 열 네살이라고 해서 혹은 일곱살이라고 해서 결코 삶의 고뇌가 없거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나이에, 혹은 그가 갖고 있는 영혼의 크기만큼의 고뇌는 함부로 타인의 잣대로 재거나 양을 가늠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툴게 공격적이고 지나치게 방어적이며 어설픈 치기로 삐딱해진 녀석을 보며 나는 나일 먹었구나를 실감한다.

 그런 아이들의 여린 속살을 한번에 들여다 볼 수 있고, 그 아이들이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내 세우는 가시에도 단 일미리의 상처도 없는 걸 보면 말이다. 다만 동서고금의 예를 들어가며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갑론을박 하느라 목이 좀 아팠을 뿐이다.

 그리고는 녀석의 한마디...

 선생님은 모르는 게 뭐예요?

  모르는 거? 많지... 다만 내가 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단다. ㅋㅋ. 하지만 확실한 건 적어도 나는 아는 것만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건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맏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났다. 같이 할 뻔 했던 두 여자아이가 안 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쨌거나 첫 수업이 지나치게 고난도-??-였고 학교도 전혀 달라서 시험 얼마 안 남은 상황에 나름 고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보면서 누군가  내 일상에 편안한 울타리를 쳐주는 존재가 있구나를 실감한다.

 

게다가 아침에 불쑥  기존에 하던 아이가 친구 데리고 갈테니 시간 빼주세요~~ 하는 바람에 수업 하나 더 늘었다.

 전화에 대고,

 야야... 혹시 그애, 개날라리에 머리도 나쁜데 공부도 안 하는 애 아니냐?

 선생님 말씀하시는 게 거의 맞아요...ㅋㅋ. 그런데 착해요~~

 착하고 공부 못하는 인간 말고 못되고 공부 잘하는 눔 없냐? 나도 실력있는 선생 좀 되 보자.

 제 친구들은 다 그래요....

 맙소사~~ 또 시작이다.

 

그래도 새 아이들은 맘이 설렌다. 그리고 이젠 안다.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건 내게 온 건 분명 오랜 인연의 섭리라는 것을....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내가 먹는 마음의 색깔을 그들은 읽어내고 거기에 물들어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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