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울엄니가 보낸 택배에 들었던 호박잎입니다. 해 먹은지는 며칠 됐는데 어제 호박 부침개 사진 찍다 보니 있더군요.
예전에 어째서 시장에서 파는 호박잎과 호박하고는 다른 거 같다고 했더니 울엄니...
울 안에 심은 거 하고 들에다 심은거 하고는 원래 다른겨~~. 하십니다.
뒤꼍에 심어놓고 아침이면 자식 들여다 보듯 가물면 물주고 흘러 내리면 조심스레 올려줬을 호박넝쿨에서 딴 호박잎과 호박은 팔기 위해 대량으로 비닐 하우스나 들에다 심은 것 하고는 당연히 다를 밖에요.
그런거 보면 정말 사람과 살아있는 것과는 -그게 식물이든, 동물이든- 교감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울엄니는 가마솥에 보리밥을 짓다가 뜸들일 무렵에 밥 위에 얹어 쪄주셨던 걸 기억합니다. 그러면 꽁보리밥에 약간은 누르댕댕해진 초록밥풀이 섞일 밖에요. 어릴 땐 꺼끄러워서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해마다 여름이면 다른 것 말고 울엄니표 호박잎은 꼭 먹습니다.
아주 자알 쪄졌네요. ^^
저걸 보내실 때는 되도록이면 여린 잎으로, 하나하나 줄기를 다아 벗겨서 울엄니 보내십니다. 그 줄기를 떼놨다가 된장찌개 끓일때 넣는 것이지요. 감자는 약간의 걸쭉함을 위해, 양파는 아주 조금 넣는데 된장의 센맛을 중화하기 위해-양파 많이 넣은 된장찌개는 전혀 된장 찌개스럽지 않다.- 그리고 청양고추는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해서인데 칼칼한 맛은 좋아해도 지나치게 매운 건 안 좋아해서리 건져내기 쉽게 저렇게 큼직하게 썹니다.
그리고는 일케 바글바글.. 끓이지요.
금방 지은 밥에 찌개만 얹어 먹어도 맛있구요.
어릴 땐 약간 멀겋게 끓이 찌개에 푹 적셔 먹는게 정통인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는 저렇게 쌈을 싸먹더군요.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줄기차게도 주룩거리는 날이었습니다. 발목 아프다는 핑계로 괜히 뒹굴뒹굴 시체놀이 흉내를 내고 있다가 호박잎과 함께 들어있던 호박을 굵게 채쳐 호박 부침개를 했습니다. 호박 부침개에는 호박만, 부추 부침개에는 부추만, 김치 부침개에는 김치만... 넣어서 부치면 순수하게 원재료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이건 내가 가진 오래되고 변하지 않을 식성입니다. 굵게 채쳐 밀가루와 소금과 물만 넣고 들기름 넉넉히 두르고 부치면 울안에서 딴 조선 호박 고유의 들큰함이 입안에 가득합니다. 밀가루는 호박이 엉길 정도로만 넣는데 호박은 채쳐 소금 살짝 뿌려 물이 나오면 거기에 밀가루를 넣어 순수하게 호박에서 나온 물로만 반죽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환장하게 맛있었어서 두 쪽 부쳐 냉큼 먹어치웠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막걸리 생각이 불쑥 나길래 제법 술꾼이 됐군. 했다는...
호박은 반 개 안 되게 남았는데 그걸 보자 갑자기 칼국수가 생각났습니다. 하여 오늘은 칼국수를 모처럼 밀게 될 것 같습니다. 투박한 국수면발에 역시다 굵게 채친 호박을 멸치 국물에 조선 간장 넣고 끓여 먹어 볼랍니다.
이게 몇 년만에 밀게 되는 국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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