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학생 하나가 상담을 받으러 왔었다.
여기서 상담은 그야말로 인생상담... 아무래도 과외선생 그만두고 심리 상담소 같은 걸 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ㅋㅋ.
그래도 놀라운 것은 다들 자알 알아듣고 얼굴 활짝 개고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고 간다는 것이다. 그런 변화가 사실 나도 놀랍다.
어제 온 아이는 나한테 배웠던 아이의 단짝 친구다. 그리고 그 애를 소개해 데리고 온 애는 두 해 정도 나한테 배우고 언젠가 올렸던 핸드폰 문자 메세지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상담 온 것은 16차원이라 불리는 말하자면 성적은 별로 안 좋은데 유난히 특별한 사고구조를 갖고 있는 아이 때문이다. 이 아이는 한 해 전 쯤 손목을 그어서 기함을 하게 했고, 두 번 째 온 아이는 멱시나 시시때때로 죽음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라서 역시나 놀라게 했다. 손목 그은 아이는 특유의 성격에서 오는 억눌린 감정의 폭발이 그런 일을 저질렀는데 그 아이 상담한 것은 그 문제가 아니었고 몇 달 째 어딘가 패닉 상태였던 모양이다. 하여 그 애 엄마로부터 선생님 그 애랑 말 좀 해 봐주세요~ 하는부탁이 왔었다. 세 시간 쯤 얘기를 해서 나름 해결책을 냈다. 그 아이의 케이스는 순전히 주위 환경의 문제고 그 압박과 스트레스였던 탓에 의외로 쉬웠다. 그 아이 엄마와 통화하는데 선생님 판단이 전에 다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씀하고 거의 같아요... 했다.
두 번째 아이는 경우가 좀 달랐는데 내 생애 그렇게 무서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건 다분히 정신적인 문제였고 신비주의적인 해석을 해 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아이한테는 신앙의 힘-크리스챤이다-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말했는데 다행이 자알 알아듣고 마음이 활짝 개서 갔다. 그 아이 돌아간 후 엄마를 잠깐 오라고 해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했었다. 그 아이가 그러더란다. 그동안 만났던 의사 선생님들보다 애도샘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라고... -자뻑!!^^;;
그리고 어제 온 아이는 물론 처음 본 아이다. 그냥 친한 친구가 고민 상담 받고 너무 좋았더라는 얘기 듣고 자기도 상담을 받고 싶은데 나한테 배우지도 않는데 면목 없어 못 온다는 얘길 한참 전부터 들었었다. 그 소리 듣고 언제 한 번 오라고 해라~~ 했는데 어제 약국에 갔다가 둘을 딱!!! 만난 것이다.
하여 둘 다 우리집으로 와서 이러저러하다는 얘길 들었다.
얘기의 요지는 성적이 떨어져서 요즘 모든 것에 의욕도 없고 삶이 두렵다는 것이었다. -공부 잘하고 역시나 엄마와 함께 독실한 크리스챤...- 그래서 나는 웬 건방이냐고... 긴 인생에 겨우 중간 고사에 성적 한 번 왕창 떨어졌다고 삶의 의욕이 상실된다면 세상에 살아갈 사람 하나 없다고... 평균 90점 넘다가 팔십 오점 나와서 죽고 싶으면 평균 70 점 맞는 애들은 뭐냐고... 95점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90 밑으로 안 내려가기만 하믄 좋겠다고 생각하믄 97점 나오는 것이 하늘의 섭리라고... 욕심으로 채워진 마음에는 더 이상 채울 게 없는 거라고...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실패 안하고 승승장구할 줄 알았냐고... 어떤 삶이든 실수와 실패가 있고 그게 없을 거라고 믿거나 없어야 된다고 믿는다는 거 자체가 벌써 지극한 시건방이라고.... 그걸 안 해본 사람이 무얼 할 수 있냐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만해서 모든 것을 달라는대로 다 주는 존재냐고... 믿는 자로써 실패와 실수가 있었다면 신의 뜻이려니... 하고 따르고 감사해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 아니겠냐고...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 거라고... 세상은 늘 가던 길로 가는데 모든 것은 내 마음 속에 있다고... 그 속에 천국을 짓고 지옥을 짓는 것도 '나'라고... 그리고 감사할 것을 찾아보라고... 사지육신 멀쩡하고 부모 형제 살아 있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성적도 좋을 만큼 머리도 좋고, 지금 보니 키도 크고 대체 뭐가 문제냐? 성적 한 번 떨어진 거 정말 가소롭다. 남들한테 부모님한테 쪽 팔린다고 하지만 정말 물어봐라. 그 사람들이 너 성적 떨어졌다고 인간 아닌 취급을 하는가... 아니면 생각이 바뀌었는가... 모든 것은 네 허영이고 욕심이다.
네 마음을 바꿔라. 세상이 바뀌진 않느니라.... 그리고 신을 믿는다면 그저 믿고 맡겨라. 인간의 맘으로 투덜대고 골내고 불안해 하는데 신이 어찌 진심으로 자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러면 지금 네가 앓고 있는 아토피도 덜 할 것이니라... 하하.
물론 머리 좋은 아이니까 잘 알아듣고 감사합니다~~~ 하고는 돌아갔다. 나는 가서 잘 지내다가 약효 떨어지믄 다시 오니라~~ 하고 보냈다.
저녁에 데리고 왔던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OO이가 앞으로 즐겁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데요~ 감사드려요...
그런 이유로 나는 영리한 아이가 좋다. 어떻게 말하든 본의와 본질을 잘 알아들어주니까...
하여 머리 좋은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나는 남의 말을 얼마나 잘 알아듣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머리 나쁜 사람 별로다. ^^;;
언젠가, 내게 말의 힘이 있는 덕-은사??-을 받았다는 소릴 들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까 목이 잠겨서-일욜 수업도 많았다- 거의 목소리가 안 나오지만 그래도 기껍고 보람있는 일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알라들아 다아 네게로 오라... 이렇게 문 앞에 써붙이고 애도쌤 상담소 운영하믄 어떨가 했더니 모두들 대 찬성이란다.
더 나이 먹고 일선에서 은퇴-??- 하고 나믄 그렇게 삶의 갈피에서 가끔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되서 물맑은 곳에 집 한 채 지어놓고 찾아오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나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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