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아프다. 아니 아픈 것이 아니라 거의 목소리가 안 나온다.
지난 주 내에 과하게 목을 썼는가.. 모르겠다. 그러나 바빴다. 나흘간 조카들이 와 있었고, 어쩌자고 그 나흘 간 쉬지도 않고 잔뜩 수업이 있었다. 잠긴 목으로 힘주어 수업했고, 잠긴 목으로 울엄니와 새새 얘기했고, 잠긴 목으로 뱅글뱅글 조카들과 얘기하며,
웃
었
다.
분명 이건 목을 많이 써서 이 지경이 됐다기보다는 어딘가 잔뜩 피로한 탓이리라. 피곤하거나 힘든 걸 자각해서 골골대지는 않는데 이렇게 불쑥 구강을 비롯한 인후 쪽에서 알아서 데모를 한다.
말하는 것이 힘들다
그 뿐이다. 어디 아픈데도 피로감도 없는데 그저 소리는 듣는 사람이 괴로울 정도로 잠겼다가 드디어 오늘 아침에는 실실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작은 정리장 하나를 새로 들여놨는데 며칠 째 틈틈히 정리를 한다. 겨우 세칸의 선반이 있을 뿐인데 책상 오른 쪽에 서 있는 정리장부터 시작해서 안방의 장롱 까지 다아 뒤집어 셋팅을 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집안은 폭탄맞은 수준이다.
이제는 들지 않는, 혹은 들을 것 같지 않은 핸드백들을 죄 버리고, 몇년이고 몇년이고 쌓아 놨던 몇년 치 다이어리 따위도 다 정리를 했다.
'수업 열시. 정우 보충...' 같은 사소한 사건들 적혀 있는 탁상용 달력도 버리지 못해 두 해 정도는 보관을 했더니 불쑥 불쑥 4,5년 전 달력들도 책꽂이에서 추억처럼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오래 전 이름을 들여다보면서 그래 그랬군... 하는 짓 따위도 한다.
죽을라나??
시간이라는 건 정말 놀라운 힘이 있어서 쓰지 않은 핸드백이며 입지 않은 옷들을 저혼자 헤지게 만든다. 그것들은 내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웃는 동안 저 혼자 그렇게 곰실곰실 소리없이 삭아가고 있었으리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공간을 최대한 아끼고 효율적으로 쓰자고 정리를 했더니 휑~~ 하고 빈 선반이나 빈 곳이 생겨버리고 말았다.하하.
그러나 또 무엇인가로 거긴 채워질 것이다.
때로 쌓아놓는 것이 죄악같기도 하고, 때로는 함부로 버리는 것이 죄악 같기도 하고...
욕심이나 욕망의 표상같았다가 근검과 절약의 표상같았다가...
죽을 때 그것들은 어떻게 비쳐질까??
버리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사실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리라...
욕심, 어리석음, 질시 따위로 가득 채운 마음의 표시가 죽은 후에 난다면 그건 너무 부끄러븐 일이겠지.
질 좋은 빈 상자를 못 버리고 쌓아 놨더니 수십개는 족히 될만한 것들이 각 서랍을 가르고 각 선반을 갈라 정리함이 되어 있다. 뚜껑 닫아 놓은 빈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가를 외기만 해도 적어도 치매 예방은 될 것이다. 이야~~
오늘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날...
왁자하면 왁자한 것대로 즐겁고 이렇게 고즈넉하고 조용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마흔 여섯 배 쯤 즐겁다.
나 가거든, 어찌 살았든 즐겁게 살았노라고...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웃으며 살았노라고... 묘비에 써줄 사람이 있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