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맑은 가을날입니다.
엊그제 한 차례 비가 오더니 어제 아침 챙!! 한 날씨......
내가 사는 집은 일층입니다.
가게에서 천원하는 팥빙수 아이스크림통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하고 있는데 어제 아침 그 팥빙수 통을 들고 을씨년스런 포즈로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쓰레기통 옆 화단에 저혼자 꿋꿋이 소국 무더기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더랬습니다.
저게 언제 저렇게 피었더란 말이냐......
반갑다는 생각과 더불어 자못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지 뭡니까?
그 꽃은 작년에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때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꽃송이도 몇 개 없었는데 이젠 제법 풍성해졌더군요.
대체 누가 그걸 거기다 심었는지-우리 동네는 대부분 담없는 빌라투성이 동네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집 마당 개념도 없다. 거기다가 그 곳은 말하자면 뒤꼍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궁금했었습니다. 그렇게 별로 사람들이 보아줄 것 같지 않는 곳에서 피어 있는 걸 보고 나는 쓰레기를 내어 놓는다거나 가끔 늦은 저녁 혼자 들어 오다가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리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새 시간은 제바퀴를 굴려 다시 그 시절-??-입니다.
작년보다 더 꽃의 갯수가 많아졌고 햇볕 들지 않는 건물들 사이에서 꽃을 피워내느라 꽃들은 해를 향해 죄 가지가 구부려져 있었습니다.
요새 며칠 나는 오며 가며 그 꽃들을 들여다 봅니다.
거리에 미화용으로 대형 화분에 심어놓은 꽃무더기 무지막지하고 화려하되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 정체불명의 소국에 비하면 이건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꽃가게에서 파는 길고 곧고 잘생겼지만 잘려진 꽃만 보다가 비록 초라하지만 땅에 튼튼히 뿌리를 박고 차가운 가을날에 피어 있는 걸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합니다.
아마 이 험한 세상 구석에서 이름없이 구부려져 살고 있는 내 모습같아서일지도 모르지요. 후후.
그리하여 요즘 나는 은밀하고 따뜻하고 훈훈하게 초라한 소국 무더기와 사랑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화단-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에 피어있는 소국 무더기입니다.
가지 몇 개 슬쩍 해와서 꽂아 놨습니다. ^^
이것도 이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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