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12월 두번 째 월요일...

오애도 2004. 12. 1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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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연말도 되고 어쩌구 하는 기념으로 좀 럭셔리한 해의 마지막 무렵을 보내자는 의기투합으로 거금 10만원이나 하는 춤 공연을 봤었지요.

그런데......  하하하!!

공연은 정말 웃겼습니다.

여기서 웃긴다는 것은 내용이 코믹하다는 것이 아니라 여하간 뭐랄까 우리가 예상했던 거 하고는 영 안 맞아서 보고나서 한참 어이없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안주 삼아 킬킬거리며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부대찌개를 먹고 커피집에 들렀다가 나중엔 맥주집에서 대장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친구들이란 것은 어릴 때나 다 자라서나 아니면 늙어 쭈그렁거릴때도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라면 친구도 자라고, 내가 나이 먹으면 친구도 나이 먹고, 내가 늙어 쭈그렁 거리면 친구도 늙어 쭈그렁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 우린 늘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결혼한 친구들의 아이들이 손톱 자라듯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요.

거울을 들여다 보듯이 친구의 얼굴에서 깊은 주름과 얇아진 살가죽과 가늘게 센 머리카락을 보면서 친구가 늙었구나...... 하듯이 나도 늙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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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데서나 소리쳐 울 수 없다는 걸 의식하면서 요즘 자꾸 우는 아이들이 새삼스러워 보입니다.

엄마손 잡고 가면서 훌쩍이는 여자 아이를 보면서 쟤는 뭣 땜에 우는 것일까를 정말 심상찮게 생각해 봅니다

그래 울 수 있다는 것도 때가 있단다. 그 때는 울면 누군가 달려와 달래 주는 걸... ..

우는 것이 특권일 때 나는 울지 않거나 울지 못하는 것을 자랑삼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요즘 내 삶의 화두는 '울음'입니다.

목이 말할 수 없이 아픈데 울어볼까요?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나는 혼자 책상앞에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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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울엄니가 보낸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그게 오기 전 냉장고에는 김치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은데다 괜히 바빠서 시장 갈 틈도 없었던 터라 며칠 째 라면 아니면 흰 밥과 스팸 구운 것, 그리고 이전에 신 김치 넣고 끓인 고등어 통조림 김치찌개 같은 캠핑용 메뉴로 근근히 살고 있었지요.

나중엔 그것도 없어서 오며 가며 천원짜리 김밥이나 두어줄 사다 먹고는 했었습니다.

모처럼 보내주신 반찬으로 한 상 차렸습니다.

메뉴는

서리태 콩 넣은 잡곡밥, 냉잇국, 고추 절임, 두부 짱아찌, 깻잎절임, 울엄니 농사 지은 무우로 들기름 넣고 볶은 무나물,  총각김치, 그리고 배추김치...또 있다.  무짱아지 무침... -쓰고 보니 다 짭짤한 반찬종류. 한동안 밥 많이 먹겠군.-

열심히 차렸더니 갑자기 진수 성찬이 됐습니다.

이렇게 얻어먹고 살다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울엄니 돌아가시믄 그땐 어쩌지요?

 

울엄니 보내신 걸로 차린 어느날 아침 밥상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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