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닳아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세번째... 신비함은 어디로 가는가!

오애도 2001. 8. 14. 19:09
일요일 종일을 하늘은 잔뜩 인상만 쓰고 쓰고 있었습니다.
뭉글한 회색 솜을 잔뜩 펼쳐놓고 내내 바람 불던 하루였습니다.
저녁에 마당-?-에 나가보니 그 회색빛 솜 사이로 노을의 붉은 색이 등화 관제 때 새어나오는 얌통머리 없는 불빛처럼 새어 나오더군요.
저녁 놀 아침 비, 아침 놀 저녁 비라고 했던가요? 그 오래된 예보를 지키느라 어제는 종일 비가 쏟아졌습니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어릴 때 우리집 마당에 떨어져 있던 미꾸라지 생각이 났습니다.
장마철에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갠 후에 마당에 나가 보면 가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웅덩이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물 웅덩이라고는 하지만 마당이 흙 마당인지라 두 바가지 정도의 물이 고여 있는 움푹 패인 곳입니다.
말갛게 개인 하늘이 그 웅덩이에 조각난 채 들어 있고, 생뚱맞게 미꾸라지는 그 하늘 한 가운데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미꾸라지라는 생선-?-은 원래 점잖게 꼬리를 흔들며 우아하게 유영을 하는 물고기가 아닌지라 사람이 다가가면 체신머리 없이 후닥닥 거리며 그 맑은 하늘을 흐려놓습니다.
오죽하면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개울물을 흐려놓는 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어느 땐 웅덩이가 아닌 그냥 흙바닥에서 파닥거리는 모습을 본 기억도 있습니다.
각설하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미꾸라지의 정체가 정말 궁금합니다.
도대체 그것은 어디서 왔을까요?
장대비가 올 때는 미꾸라지가 가끔 하늘을 거슬러 튀어 올라 비와 섞여서 오는 것이라고 할머니께서 말씀 하셨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물 속에 있던 미꾸라지가 비가 많이 오니까 바깥 세상도 물속인 줄 알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타고 날았구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시내(川)하고도 떨어져 있고, 집 근처에 물 흐르는 곳이라곤 없는데 한 두 발짝도 아니고 개울까지는 일킬로미터도 더 떨어져 있는 곳에서 정말 미꾸라지는 튀어 올라서 우리집 마당으로 날아올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건 과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설명 안되는 것인데 그때는 아무런 의심없이 믿어졌습니다.
게다가 그 나름의 이론까지 정립하면서 말이지요.
어쨋거나 그런 것을 딱 한 번만 봤다면 내가 본 것이 착각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그것을 잡아다 마당에 풀어논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세 번 이상이었습니다.
언젠가 어른이 돼서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느냐구요. 물론 말이 안되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본 것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어릴 때 일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미화되고 신비화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상상속에서 일어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나일 먹고 어른이 되면서 점점 신비한 것이 없어집니다.
모든 것은 어른의 시각으로 설명이 되고 그걸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은 그런 미꾸라지 기억을 나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소설을 읽다가 내가 본 상황과 똑같은 이야기가 묘사된 것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본 것과 들은 것과 알고 있는 것은 허황된 어린아이의 기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어제는 종일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잠깐 어디선가 미꾸라지가 날아오르고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울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설명 안되는 묘한 예감입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도시 한 복판에서는 미꾸라지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이제 날아와도 물웅덩이에는 내려와 앉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메마른 도시의 아스팔트에는 내려와 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그것은 그야말로 맑은 마음을 가진 어린아이에게만 보여져 이렇게 눈이 흐려진 중년의 눈에는 띄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제처럼 비가 많이 쏟아진 날에는 어딘가에 그것은 내려와 앉아 파닥거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동화를 진짜로 믿어주는 순순한 사람들 눈에 띄어 그 미꾸라지는 용이 되려다 만 이무기가 아닌 이무기가 되려다 못 된 미꾸라지 쯤으로 기억 될 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봤던 신비함은 어디로 갔을까요.
한밤중에 깨어나 시커먼 창문만 봐도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기던 공포가 사라지면서 그 신비도 사라졌습니다.
다시 한 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마당 한 구석에 고인 물과 거기 담겨 있던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하늘 속에 가만히 반쯤은 진흙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는 미꾸라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