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노트를 들추는데 샘물체로 시 한편이 타이프된 노란 종이가 툭 떨어졌습니다.
나리꽃이라는 도종환의 시가 거기에 까맣게 박혀 있었습니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첫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원에 들어가 있는 친구가 예전에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같이 학원에서 선생으로 만나 그녀가 결혼하기 전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입니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들여다 봤습니다.
이제 그녀는 그렇게 좋은 글을 만나도 나에게 보내줄 마음의 여유가 많이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대신 시간의 대부분이 그녀의 아기와 남편에게 바쳐지겠지요.
늘 만나던 몇몇 친구들과 모임이 있을 때 언제나 신랑보다 먼저 들어가려는 그녀를, 우리 우아한 싱글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놀려댑니다. 이야... 우리의 아무개가 저러구 살지 누가 알았냐....
그럼 그 친구 그럽니다.
'너희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얼마나 맞구 살면 이러겠니?'
'야 그럼 때려쳐 때려쳐'
'그래두 시집이라구 간신히 다 늦게 간 건데 잘 해봐야지, 에휴휴휴'
'근데 뭘로 때리는데?'
'고마해, 고마해'
우헤헤헤헤헤
아주 행복하게 잘 산다는 것의 반어법입니다.
인생이 흘러가는 모습이겠지요?
다시는 그녀가 나에게 느낌 좋은 시따위를 적어주지 않는다해도 그리하여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가지 못한채 그전의 애틋함을 볼 수 없다고 해도 그녀가 행복해 보여 나는 좋고 기쁩니다.
앞으로 그녀와 만나면 주된 이야기는 육아와 관련된 것일 게 분명합니다.
임신해 있는 동안 임신이 우리 대화의 칠십퍼센트를 차지했거든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맞는 얘기입니다.
나리꽃
도종환
세월의 어느 물가에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무심히 바라보았으면 싶습니다.
흐르는 물에 머리 감아 바람에 말리고
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나이가 들었으면 싶습니다.
살다보면 어느 날 큰 물 지는 날
서로 손을 잡고 견디다가도
목숨의 아파리까지 물은 차올라
물줄기에 쓸려가는 날 있겠지요
삼천 굽이 물줄기 두 발짝도 못 가서 손을 잃고
영영 헤어지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또다시 태어나는 세상의 남는 생애를
세월의 어느 물가에서 따로따로 그리워하며 살겠지요
그리워하다 그리워하다 목이 길어진
나리꽃 한송이씩 되어
바위 틈에서고 잡풀 속에서고 살아가겠지요

나리꽃이라는 도종환의 시가 거기에 까맣게 박혀 있었습니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첫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원에 들어가 있는 친구가 예전에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같이 학원에서 선생으로 만나 그녀가 결혼하기 전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입니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들여다 봤습니다.
이제 그녀는 그렇게 좋은 글을 만나도 나에게 보내줄 마음의 여유가 많이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대신 시간의 대부분이 그녀의 아기와 남편에게 바쳐지겠지요.
늘 만나던 몇몇 친구들과 모임이 있을 때 언제나 신랑보다 먼저 들어가려는 그녀를, 우리 우아한 싱글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놀려댑니다. 이야... 우리의 아무개가 저러구 살지 누가 알았냐....
그럼 그 친구 그럽니다.
'너희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얼마나 맞구 살면 이러겠니?'
'야 그럼 때려쳐 때려쳐'
'그래두 시집이라구 간신히 다 늦게 간 건데 잘 해봐야지, 에휴휴휴'
'근데 뭘로 때리는데?'
'고마해, 고마해'
우헤헤헤헤헤
아주 행복하게 잘 산다는 것의 반어법입니다.
인생이 흘러가는 모습이겠지요?
다시는 그녀가 나에게 느낌 좋은 시따위를 적어주지 않는다해도 그리하여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가지 못한채 그전의 애틋함을 볼 수 없다고 해도 그녀가 행복해 보여 나는 좋고 기쁩니다.
앞으로 그녀와 만나면 주된 이야기는 육아와 관련된 것일 게 분명합니다.
임신해 있는 동안 임신이 우리 대화의 칠십퍼센트를 차지했거든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맞는 얘기입니다.
나리꽃
도종환
세월의 어느 물가에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무심히 바라보았으면 싶습니다.
흐르는 물에 머리 감아 바람에 말리고
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나이가 들었으면 싶습니다.
살다보면 어느 날 큰 물 지는 날
서로 손을 잡고 견디다가도
목숨의 아파리까지 물은 차올라
물줄기에 쓸려가는 날 있겠지요
삼천 굽이 물줄기 두 발짝도 못 가서 손을 잃고
영영 헤어지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또다시 태어나는 세상의 남는 생애를
세월의 어느 물가에서 따로따로 그리워하며 살겠지요
그리워하다 그리워하다 목이 길어진
나리꽃 한송이씩 되어
바위 틈에서고 잡풀 속에서고 살아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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