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만 오천원에 생선회를 배달해 주는 곳이 있습니다.
제목이 도미살인데 무채 위에 도미살과 새우 서너 마리 그리고 삶은 소라가 얹혀져 있고 상치며 깻잎, 그리고 초고추장과 와사비가 우동 국물과 함께 옵니다.
가끔 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실 때 배달을 시키는데 우린 먹을 때마다 감탄을 합니다.
'거 이상하게 얕은 맛이 있단 말이야....'
고급스럽고 깊은 맛이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얕은 끌어당김 같은 것인데 뭐랄까 유치한 멜로를 멜로라고 싫어하면서도 그 멜로성 때문에 멍청하니 앉아서 보게 되는 것 하고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각설하고 그것을 며칠 전에 배달해 놓고 먹다가 남아서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그냥 냉장고에 옮겨 놨었습니다.
냉장고 문 열 때마다 눈에 거슬려서 버릴까 어쩔까를 고민하다가 낮에 그걸 모두 거두어서 깨끗이 헹구어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더랬습니다.
오래된 감자-싹이 길게 났다-, 무우 한 토막, 역시나 유통기한 며칠 지난 두부, 조글거리기 시작한 청양고추, 말라가던 파 한 토막, 지난 설에 가져와 국 끓여먹고 남은 냉이 한 줌...
된장 풀고 고추장 풀고 다 쓸어넣고 부글부글-큰 냄비였다. 작은 냄비였으면 당연히 보글보글 이겠지^^;;-끓였습니다.
당연히 냄새... 죽였지요. 맛... 역시 환상이었습니다.
비록 수명 다 해 가는 것들의 모임이긴 하지만 그것들이 어울려져 그야말로 감칠맛 으뜸인 해물 된장찌개가 된 것입니다.
물의 속성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흐르고 씻어내 깨긋하게 합니다.
불의 속성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멸하고 동시에 생성합니다
물로 씻어내고, 불로 재생시킵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그 사이에 냄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얇은 차단이 없다면 물과 불은 영원히 화합하지 못한 채 서로를 극할 것입니다.
그것이 요리입니다.
냉장고를 뒤져 나는 낮에 예술을-???- 완성시켰습니다.
우린... 아니 나는 그 얇은 차단이 없어서 물이었다가 불이었다가 하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삶을 요리하는데 있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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