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나 밥 한 끼를 먹고 들어왔다.
가을 탓인가... 나를 포함해 누구 하나 생기 있어 뵈지 않았다. 그들 각자 어딘가 웅크리고 있는 듯 보인 것은 내 심리 탓이었는지 모른다.
낼 모레 칠십이신 내 어머니가 웃어른의 제삿날을 깜빡 잊으셨다. 그것도 단 하루 상관으로...
내 어머니는 아직 건강하시고 여전히 긍정적이고 늘 씩씩하시고 당연하게 살아가는 게 활기이신 양반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어머니의 실수에 아연해 하고 소스라쳤다.
불가해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어느 땐 너무 뻔하다.
그렇게 뻔하다는 사실은 또 불가해하다.
왜냐하면 삶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는데 결코 다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가 그렇게 늙어 굽은 나무가 숯이 되어 사그라지듯 어느 시절에 나 역시 그리 되겠지....
그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불가해한 심정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진지하게 진지하게 진지하게 예전의 책들과 새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저 문장과 글자들에서 울리는 느낌이 좋다. 예전에 봤던 같은 문장과 단어들은 어떻게 그렇게 전혀 다른 얘기들을 할 수 있는지......
이상하게 올 가을은 많은 것들이 계절의 손아귀에 잡혀 질질 끌려가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