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말라버린 화분을 들여다 본다.

오애도 2003. 5. 12. 18:27
지난 봄의 입구 쯤에 사왔던 화분이 몇 개 있었습니다.
잎이 튼실하고 막 벌어지기 시작하는 꽃봉오리가 달려있는 치자 화분-이건 꽃 세 송이를 피우고는 자꾸자꾸 잎만 무성해진다. 꽃송이는 여전히 벌어지지 않고 그냥 있다. 이상하다-하고, 이름도 모르는 보라색 자잘한 방울 모양이 다닥다닥 붙은 -음.... 어릴 적 꿀꽃이라고 불렀던 들꽃하고 닮았음-것 하고- 이것은 며칠 만에 그 꽃을 다 피우고 말랐다-, 언젠가 등장했던 도라지꽃과 은방울 꽃의 중간형이자 축소판인 흰 꽃 화분입니다.
그런데 그 흰 꽃 화분이 오늘 아침 들여다보니 그만 바삭바삭 드라이플라워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꽃송이들도 제법 달려 있었고 막 핀 꽃들도 그 순결한-??-흰색을 하고 그만 물기없이 되 버린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실실 이파리가 기운 없는 걸 보고도 물 주는 것을 그만 깜빡하고는 어제 새벽에 강화도를 갔다 늦게 돌아와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쯧쯧
그래도 꽤 오랫동안 자꾸자꾸 꽃을 피워 신통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잎과 줄기는여린데 꽃송이는 정말 벅차게 달고 있었던 터라 저것이 다 꽃으로 피기나 할까 하는 의심의 들 정도였는데 정말 남김없이 모두들 꽃으로 피워내더군요.
처음 사 와서는 그 작고 여리고 애처롭지만 풍성한 생명력으로 끝도 없이 꽃을 피우는 게 신기하고 기특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코 앞에 내려 놓고 들여다 봤었습니다.
그때 그 작은 꽃들은 얼마나 싱싱하고 풋풋하게 빛나던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들여다보는 일도 안 하게 되고 어쩌다 창문 열다가 손끝에 걸리면 하는 생각이 겨우, 이거 정말 생각보다 오래 가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는 오늘 아침 바삭하게 비틀린 잎을 하고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풀이나...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생명을 생명답게 이어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내 몫 혹은 내 것 아니면 우리 것으로 만들었을 때, 거기에는 아주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 나름의 책임과 의무같은게 있어야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만약 그 꽃들을 내가 사 오지 않았다면 어디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죽든 살든 나하고야 하등 관계없는 일이었겠지요.
돈을 지불하고 사 온 꽃나무나 화분조차 내가 들여다봐주지 않고 관심과 애정이 사라지면 저리 힘을 잃고, 삶을 접을 지경인데 하물며 사람임에야...

자 그리하여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결혼 안 한 이유는 바로 이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오직 한사람한테만 늙어 죽을 때까지 가질 자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예의 그 망상같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저 물이나 주고 참 예쁘넹 하는 정도의 관심만 가져도 되는 꽃조차 제대로 못 건사를 하는데 어찌 사람을 선택해 그 사람을 평생 사랑하고 보살피고 어쩌고를 하겠습니까? ^^;;

만약에 눈탱이 확 튀어나와 결혼했는데 어느날 그 사람이 그저 나를 귀찮게 하거나 미운 꼴만 보여준다고 밥도 안 주고 물도 안 주고 해서 저세상으로 보낼수도 없고--엥!! 끔직한 얘기네...- 푸하하하

그래서 밖에 내놓은 치자나무는 꽃을 못피우는 지 모릅니다. 봉오리는 자꾸 떨어지고 웬 진딧물까지....??
예민한 꽃인 모양입니다.

말라버린 흰 꽃 화분 옆에는, 너무 길게 자라 줄기를 잘라 유리컵에 꽂아놓은 페파민트 줄기가 그야말로 끝도 없이 자라고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게 잘 자라는 이유는 아마, 저것은 정말 신기하게 잘 자라네... 하고 적어도 내가, 이틀에 한 번은 보고 생각해주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물 속에 꽂아 놓았으니 따로 물 줄 필요는 없음-
그런 하찮은 관심이 저렇게 튼실하게 자라게 하는 걸까요?
어디 페파민트 줄기 같은 사람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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