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새 핸드폰에 관한 소고

오애도 2003. 5. 1. 18:10
새로 핸드폰 기종을 바꿨습니다.

원래 나는 남들 다 하는데 혼자 안 하는 것도 용기다 어쩌구 하는 말을 생활의 모토로 삼은 터라 그런 것-유행, 첨단, 새로운 것-에는 무덤덤, 무의욕, 무신경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엊그제 비가 줄줄 오는데 남대문 시장의 골목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명동에 들러 그만 전화기를 바꾼 것입니다.

나온지 겨우 이틀 된 따끈따끈한 신제품이라더군요.
먼저 것도 사실 기능상으로나 사용감에는 하등 문제가 없던터라 이렇게 별 문제 없는 것을 갈아치울라치면 어딘가 잔뜩 캥기고 누군가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밧데리 수명이 다 되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쓰지 못할 지경은 아니니까...-
어쨌든 과연 기계문명이라는 것은 날이면 날마다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는 터라 우당탕하는 음악이며 요란시런 칼라의 그림하며 그야말로 첨단스럽기는 한데 문제는 어딘지 모르게 경망스런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뭔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휩쓸려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분명 내가 편협한 인간인 탓일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한테, 야 선생님 핸펀 바꿨다 멋있지 않냐, 클클
이야 웬일이세여~~ 에이 나도 새걸로 바꾸고 싶은데... 어쩌구 하는 대화를 하고 있자면 말입니다.

그래도, 비 내리고 달 뜬 밤에 학이 날고 꽃밭에서 똥 싸는 꿈!!-화투의 오광이 네온으로 번쩍번쩍한다- 돈 대박 인생 대역전!! 뭐 이런 그림을 다운 받아 대기 화면에 깔아놨습니다. 하하하

어쨌거나 편리해지고 넘쳐나는 것들로 인해, 사는 게 더 행복한 것인지 어쩐지에 대해서 나는 늘 혼란스럽습니다. 거기에는 왠지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그것은 아마 가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게 많아 늘 아쉬워했던 쓸쓸한 시절들을 살아냈기 때문이겠지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리하여 잘못되고 비틀렸던 부분들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엉킨 실타래 풀듯 풀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정말 가슴 저 밑바닥까지 쓰리게 훑고 지나갑니다.

그리하여 넘쳐나고 남아나는 것들이 주는 미덕은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해 쓰린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핸드폰 따위 없어도 잘 살았고, 행복했고, 따뜻했던 시절이라고 말한다면 지나간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과 향수 탓일까요?

사족: 친구가 착폰식-그런게 있나???-을 해야한다길래 엊저녘에 나갔다가 발목 삐끗 부상 중입니다. 흑흑
띵띵 부은 발목을 하고 이걸 쓰고 있습니다.
새 기계에 대한 액땜치고는 좀 거한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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