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시체농장에 관한 소고!!

오애도 2003. 1. 16. 11:18
시체농장란 게 있습니다.
미국의 테네시 주에 있는 이 시체 농장은 기증받은 시체를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방치-??-해 놓고 그 부패의 과정을 살피는 곳입니다.
그곳엔 도처에 시체들이 있습니다.
어제 버려진 시체.
한달 전에 버려진 시체.
구더기가 득시글 거리는 시체.
엽기적으로 배 부분이 잔뜩 부풀어오른 시체.
뼈만 앙상한 시체 등.

그곳에서는 그렇게 변해가는 시체들을 연구해 범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그것들을 보존하는 일을 합니다.

젊고, 아름답고, 선이 고운 젊은 연구원이 이제 막 숨을 거둔 육척 거구의 시신에 옷을 입히는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막 사후강직 상태가 시작된 시체에 옷을 입히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 듯 보입니다.
그 시체는 3010-삼공일공-이라고 불려집니다.
시체에 옷을 입히는 것은 그렇게 옷을 입고 있을 때 부패의 정도가 그렇지 않을 때와 어떻게 다른 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컷으로 찍혀진 시체의 모습을 빠른 속도로 이어 보여주면, 마치 영화장면처럼 죽고 난 후의 변화를 실감나게 볼 수 있습니다.
시체들은 그렇게 흉한 모습으로 썩어가면서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이나 동물들에게 뜯어먹히거나, 하는 것들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삼공일공의 잔해들-뼈, 혹은 마른 살들-은 다시 그 젊고 아름다운 연구원에 의해 수거되어 깨끗이 씻겨지고 다듬어져 세세한 것들을 기록한 다음 상자 속에 넣어져 다른 시체의 잔해들과 함께 보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다른 샘플-??-로 교체가 된다고 합니다.

젊은 연구원이 살들은 다 부패해 버리고 뼈만 남은 시신에서 머리부분을 잘라낼 때, 그것은 이미 사람의 몸이 아니라 말라버린 나무둥치에서 나뭇가지를 자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엊그제 늦은 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본 프로그램입니다.

말라버린 발뒤꿈치에서 삐져 나온 인대는 마치 육포줄기 같았구요...
사람이건 짐승이건 죽으면 그저 한 덩어리의 물질에 불과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한덩어리의 유기물질에 지나지않음을 막아주는 것이 영혼이나 마음이나 생각 같은 무형의 것이라는 것은 참 묘한 아이러닙니다.
어쨋거나 엽기적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에 맞아떨어지는 상황을 보고 난 후 나는 새삼스럽게 감사의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났습니다.
결코 내가 할 수 없고, 하지 않을 일들을, 누군가 묵묵히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신 해 주고, 그것들에 의해 생활이 진보하고, 삶이 진보하고, 나아가 역사의 진보까지 이루어진다는 사실에는 뭐 질투가 일기도 했구요.
왠지 나는 구석에 처박혀 끙끙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의 생활이 역사의 발전이나 타인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느냐하는 심각하고 거창한 회의까지 들지 뭡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 신념을 위해 살 것입니다.
그 신념이 비록 자신만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삶에-단지 나, 혹은 내 가족, 그리고 나와 관계되어 있으되 나에게 유익한 사람들뿐이 아닌-코딱지만큼의 기여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밤중에 그것도 한 시 넘어 운동하고 들어와 침대에 누워 실실 책장 넘기며 봤던-너무 적나라하게 엽기적이었으므로- 다큐멘터리소감이었습니다.

어쨋거나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성은 드라마나 소설의 허구성에 비해 훨씬 강한 메시지와 감동을 전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