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땅콩과 삶은 밤
가을 한철 잠깐 먹을 수 있는 생땅콩 삶은 것은 가난한 어릴 적 추억의 먹거리다.
추수하고 난 땅콩밭에서 오빠들이랑 이삭줍기로 땅콩을 캤다. 기껏해야 국민하교 고학년인 오빠는 삽으로 흙을 떠 냈고 나는 매의 눈으로 혹시 남기고 갔을 땅콩이 있는가를 살폈다. 가끔 두 개씩 건질 때는 그야말로 왕건이자 노다지...
몇시간을 흙을 파도 껍질 째의 땅콩은 한 됫박은커녕 반 됫박도 안됐다.
그것을 삶아 먹었던 기억은 없고 그냥 날것로 다 까먹었던가...
삶은 땅콩의 기억은 어릴 적 시골 마을의 가을 축제인 학교 운동회 때 친구네 가족이 싸온 걸 얻어 먹었던 게 처음이었다.
생땅콩을 주문해 어릴 적 생각을 하며 먹었다. 변함없는 맛이라는 게 놀랍다.
나이 먹으니 어릴 때 맛있게 먹었던 것들이 옛맛이 아닌 게 훨씬 많기 때문이다.
밤도 어릴 때는 여물기도 전에 남의 집 밤나무에 올라 풋밤을 따 먹던 것을 생각하면 요즘엔 정말 흔하고 널린 것이고 맛도 결코 옛맛이 아니다. 속껍질이 맨손으로도 솔솔 벗겨지는 풋밤을 까서 오독거리며 먹던 기억...
보름 전 쯤에 가까운 곳에 사는 제자가.. 드릴 게 있고, 상담-??-할 게 있다면서 들러 한보따리 내려놓고 갔다.
상담은...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마음 쓰이는 이러저러한 일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의 조언은... 상대나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경우 내 마음을 바꾸면 된다... 였다. 하하하.
지난 여름엔...
첫 월급을 탔다고 맛있는 것 사 드시라며...
굉장히 알뜰하고 근검한 친구임을 아는 터라 저 용돈의 무게-한창 취업준비를 할 때, 제가 빨리 취업이 돼야 선생님 용돈을 드릴 텐데요.... 했었음-가 크고 깊어서 아직 안 쓰고 있다.
새로 공부를 시작하며 샤프연필 열 자루를 해외 직구로 사서 따로 꽂아 놓으며 보니 좁은 집에 저렇게 필통이 여러 개...
그럼에도 아직도 마트의 문구 코너나 서점의 문구 코너에 가면 이것저것이 사고 싶다. 노트나 펜 같은 걸 사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보지만 아직 쓰지 않은 것들이 꽤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다.
어쨌거나 저것들을 다 쓰기는 할 것인가!!
예전에 학생들 가르칠 때는 저런 가성비 좋은 샤프를 사 놨다가 아이들한테 나눠주는 즐거움도 있었다.
옛생각이 나서 주문해 놓고 보니 저 연필을 쓰기 위해 수학문제라도 잔뜩 풀어야 하나...
그러나 오랜 경험으로 보건데 세상에 쓸모 없는 것들은 없고 언젠가는 다 쓰게 된다는 것.
그러나 그게 언제가 될 것인가!! 흠...
공부하는 대신에 열심히 돌보고 있는 아기가 저렇게 컸다.
찬조출연한 손은 나대신 가끔 아르바이트로 큰 아이의 놀이 친구가 돼 준 대학생 제자의 손이다. ㅋㅋ
아기가 좀 더 크면 나는 전투적으로 다시 사 놓은 펜들이 닳도록 공부를 할 생각.
내 삶에 있어서 값진 경험 몇 개 안에 아기를 돌보는 일도 순위에 꼽힐 것이다.
어떤 경험이든 마음을 다 하는 일에서는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의 급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
그러나... 벌써 보름 넘게 갤갤이다.
환절기 몸살이 제대로 왔는지 근육통 덕에 거의 매일 밤마다 타이레놀 삼키며 잠드는 중.
시작은 왼쪽 발목이 시큰거림. -괜찮아짐-
골수검사할 때 바늘 들어갔던 오른쪽 엉치뼈가 아픔-이건 가끔 날이 흐리면 아프기도 함-
혓바늘 돋음.-나았음-
입술 부르틈.
양쪽 코 안도 헒.-진행 중-
엊그제는 임파선이 아닌 갑상선-읭??-을 만져보니 동통.-괜찮아짐-
어제 저녁엔 부르텄던 입술이 찢어지면서 피 질질.
오늘 아침 오른쪽 코에서 코피.
이렇게 써 넣고 보니 큰 병의 전조 증상 같지만 그저 축적된 피로로 몸이 그나름 리셋되느라 그러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나이듦의 한단계 업그레이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뭐라든 기운 펄펄인 젊은 나이가 아니라는 걸 잔뜩 실감하는 중.
그나저나 오늘 대전 친구네로 고구마 캐러 가기로 했는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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