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삐끗!!!

오애도 2019. 9. 9. 23:14

태풍으로 나뭇잎이 잔뜩 떨어져 있는 길을 걷다가 발목을 삐끗!!! 했다. 한달 사이에 두 번째다.

어릴 때부터 자주 삐끗!!을 해서 사실 나는 그게 제일 겁난다. 대부분 오른쪽 발목을 삐끗 하고 며칠 부어 있다가 저절로 가라앉지만 그 넘어지는 순간의 아찔함이 무섭다.

삐끗은 사실 삐끗만 하고 넘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훨씬 나쁘다. 길게 아프고 그래서 며칠 절뚝거리며 걷게 되기도 하고 심하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야 할 정도로...

반면에 심하게 삐끗해도 차라리 꽈당 하고 넘어지면 의외로 발목은 무사한 경우가 많다.

오늘의 경우가 그렇다.  정말 온 몸으로 꽈당!!! 하고 넘어졌고 처음으로 왼쪽 발목이 심하게 삐끗했지만 일어서는 순간 발목이 아프긴 하지만 크게 치명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대신 팔이 오른쪽 팔꿈치부터 10센치 가까이 심하게 타박상을 입어 뻘겋게 피가 배어나왔다. 깊이 패이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쓸리는 바람에 무시무시하게 뻘겋다. 약국에 갔더니 집에 후시딘 같은 게 있으면 바르라고 그냥 보낸다.

일 마치고 돌아와 연고도 바르고 발목에 겔타입의 파스를 발랐다. 발목은 비틀리면서 전해질이 쌓였는지 두툼하게 부어 올랐지만 뭐... 괜찮다. 뼈에 금이 가거나 힘줄이 늘어나거나 한 것은 아니어서 다행인 것이고 자고 일어나면 나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겠지.

바르는 겔을 보니 엄니가 예전에 방바닥에 넘어져서 무릎이 부어올랐을 때 샀던 것이다.  엄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무릎은 꽤 부어올랐다. 병원엘 가려면 119를 불러야 할 것인데 일단 밤을 지내 보기로 했다.  어차피 병원에 간다한들 별다른 처치를 할 게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엄니 무릎을 살피느라 밤을 샜고 다행이 골절은 아닌지 견딜만 하다고 하셔서 며칠 고생 후 나아지셨다.

 지금 생각하면 엄니의 그런 자잘한 사고는 내게 정말 치명적인 스트레스였다. 엄니가 넘어지는 순간, 혹은 얘야, 내가 넘어졌어...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정말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픈 엄니와 함께 지내는 물리적 힘듦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니는 서서히 근육이 퇴화하는 파킨슨 병이 오는 중이었고 그래서 자주 꽈당 하고 넘어져도 당신 힘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일어서지질 않았던 거였다.  나는, 엄니 엄니 이렇게 이렇게 스스로 일어나 보세요... 하면서 같이 씨름을 했었다.

엄니 스스로 일어나셔야 나아진다고... 힘들지만 혼자 해보시라고... 지금 생각하니 그냥 얼른 부축해서 일으켜 드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지금도 끅끅 울게 된다.  


사실 요즘도 매일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엄니 생각을 한다. 롯데 마트에서 파는 여름용 바지만 봐도, 호박을 채치면서 예전에 엄니가 보내준 호박이 떠오르고, TV 채널을 돌리다 가요무대를 봐도, 열무김치 한 팩을 사들고 오면서도 엄니의 열무김치가 떠오른다. 개그 콘서트를 봐도, 엄니랑 비슷한 노인들 모습만 봐도 불쑥 불쑥... 버스 타고 가면서 울컥 눈물이 솟기도 한다.

 약이 들어 있는 서랍을 열면 엄니 때문에 샀던 이런저런 약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약들을 보면 언제 어떤 이유로 샀는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엄니 돌아가신지 이제 만 3년이 돼 간다.

삶과 죽음과 헤어짐과 인연이란 걸 생각해보면 문득 쓸쓸하게 허망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엄니...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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