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만에 외래...
보통 채혈 후 한시간 쯤 지나면 일반 '혈액' 검사가 먼저 뜨고 좀 있다가 일반 '화학' 검사가 뜨는데 어제는 화학검사가 먼저 뜨고 아무리 기다려도 혈액검사 결과가 올라오지 않았다.
분명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일 거 같아서 간호사한테 물었더니 혈소판 검사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고 했다.
흠...
지나치게 많이 떨어졌거나 지나치게 많이 오르면 육안으로 검사를 해야 하느라 늦는 거라고...
먼저 불러준 나머지 수치들은 백혈구는 딸랑 이백 정도 올랐고 호중구도 겨우 이백... -사실 500이하면 일반식을 하면 안되고 저 정도면 거의 무균실행이어야 하지만 나는 그동안 정수기 물에, 먹으면 안된다는 딸기에, 유통기한 지난 치즈에 전날 결혼식에 가서 생선초밥까지 먹고 있었지만 크게 별일 없다. 그러고 보면 일반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 각자의 상태에 따라 굉장이 다른 모양이다.- 그래도 올랐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고 긍정적인 것이지만 대체 혈소판은 어찌된 것일까?
뭐든 늘 하던대로가 아니면 불안한 것인데 문득 앞으로 꽤나 긴 시간을, 아니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사소하게 동동거리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까지 부어오른 잇몸 때문에 꽤 성가셨다.
통증이 심해진다거나 차도가 없으면 두 가지 수치 -백혈구와 호중구-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것이 실실 오르면 통증이 스르르 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인데 새벽부터 조금씩 통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정말 참깨 반토막 정도의... 대신 전신 근육통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
2백 개의 백혈구와 백여나므 개의 호중구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 오늘 새벽부터였을 것이다.
혈소판 수치가 뜨고 주치의 면담...
혈소판은 많이 떨어졌지만 수혈하기 전-17,000-에 비해서 올라있었기 때문에-현재 28,000- 아마 오르고 있는 중... 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더니 역시!!
의사: 백혈구가 오르기 시작했어요. 항생제도 끊고 2주 후에 오세요~
나: 근육통이 심해졌어요.
의사: 그럴 거예요.
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하하하
하고 나왔다.
2주 텀은 앞으로 별다른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 외래에 하게 될 유전자 검사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히크만 소독을 하고 버스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문득, 쌀쌀하기는 했지만 봄의 색깔이 스며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돌아와서는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서 밥 먹고 그대로 쓰러져 낮잠을 한 시간쯤 잤다.
온몸 근육통은 골수가 생성되느라 그럴 것이고 잇몸 아픈 것은 백혈구 수치만 오르면 나을 거라고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심하게 아프면 혼자서 아프~ 잉잉 하기도 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아이처럼 징징거리나 싶어서... ㅋㅋ
밤에는 다시 타이레놀 먹고 정말 모처럼 푸욱 잘 잤다.
하여 물리적으로 하는 집중 치료는 다아 끝났고 다음 유전자검사 결과에 따라 2년 동안 유지치료를 하게 될 것이다. 유전자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믄 골수검사를 하게 되겠지.
정말 다행인 것은 그동안 골수검사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
하여 히크만 씨는 여전이 주렁주렁...
뭐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달고 있어야겠다. 그동안 말썽 한번 안 피우고 잘 있었으니까 참 착한 친구다.
봄이 오면...
나는 실실 청계산엘 다시 다닐 것이고 수놓기를 배울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영어 프로그램이라도 사서 영어공부도 할 것이고 수영도 다시 시작할 것이며 바로 앞의 도서관에 다니며 책도 다시 많이많이 읽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늘 마음에 걸렸던 퀼트천을 없애기 위해 바느질도 열심히... ㅋ
다이어트도 다시 할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싶다. 2년 동안은 그렇게 널럴하게 누.리.며 살 것이다.
울엄니가 내게 와 계셨던 기간이 정확히 2년 5개월이었다.
봄이었던 3월 28일에 오셨다가 이태를 지내고 8월 29일에 청주로 가셨고 두 달 후 돌아가셨다.
내 치료 기간은 정확히 2년 5개월이 걸린다. 5개월의 집중 치료와 2년의 유지치료...
엄니는 어쩌면 내게 휴가와 휴식의 시간을 주셨는지 모른다.
평생 한번도 누구에게 기대서 살아본 적 없었던 내 어머니는 그 마지막 기간을 온전히 내게 기댔고 보살핌을 받았던 시간이었으므로...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온전히 누구에게 기대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아프고 나니... 이상하게 세상이 온통 기대도 좋다고 어깨를 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여 아주 편안하고 편안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고 그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동동거림도 없고 현재가 고달프지도 않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누군가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로... 씩씩하게 살아야 되는 날이 놓여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엄니...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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