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마지막 항암제 투여 후에 첫 외래일이었다.
어차피 두 주는 지나야 혈액수치들이 바닥을 치는 것이고 게다가 2차 공고가 별 탈 없이 항생제조차도 안 먹고 넘겼기 때문에 이번에는 중간 외래를 안 잡았을 것이다.
항암 횟수가 누적될수록 골수는 데미지를 입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동안 크게 문제 없이 착하고 고맙게도 수혈 한번 안 하고, 열 한번 안 나고 지냈던 터라 어서 시간이 가기만을 바랐었다.
유달리 속이 불편했고 유달리 구내염이 심해서 왼쪽 아래 잇몸이 부어올라 먹는 게 고생스러웠지만 뭐... 마지막이니까... 그리고 백혈병인데 이 정도로 아프다고 징징대면 벌받을 거 같아서-골수이식하고 오는 구내염 숙주반응에 비하면- 꾸역꾸역, 심하게 아프면 타이레놀을 삼키며 참았다. 어차피 백혈구-중에 호중구-수치만 오르면 기적처럼 나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꽝꽝 얼어붙게 추운 날 채혈을 하고 5층 17호실로 히크만 카테터 소독하러 가서 간호사랑 다음 주면 분명 이거 제거할 거라고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고 신나게 얘기하고 내려왔다.
조금 있다가 혈액검사 결과가 내 앱에 떴다.
그런데 오잉????!!!! 이게 아닌데!!!
혈소판수치가 지나치게 낮았다. 백혈구, 호중구 수치 낮은 건 당연한 거고 거기에 따라 혈색소-적혈구-나 혈소판도 수치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번엔 양상이 많이 달랐다.
혈소판 수치가 처음 진단 받고 병원에 입원한 당시보다 더 낮았다. 그 당시는 만 팔천이었고- 몸 여기저기 블루베리 으깨놓은 것 같은 멍이 이유도 없이 듦- 지금 수치는 만 칠천-표준은 15만에서 40만-.
흠...
그러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쩐지 지나치게 너무 아무일 없이 크게 아프지도 고생스럽지도 않고 과정이 너무나 스므스-??-해서 한편으로는 이상한 불안함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백혈병 카페 같은 데 들어가서 다른 환우들 투병과정을 보면 나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주치의 면담에 내 첫마디가
저 문제 생겼지요?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수혈 좀 받아야겠어요. 혈소판이랑 적혈구...
적혈구도 받아요? -걔는 크게 내려가지 않았는데 희한하게 얘는 발병 내내 큰 오르내림이 없었다- 반문하고 보니 이번엔 처음으로 핑~ 어지럼증이 종종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는, 자주 봅시다~ 흠... 내일 또 오세요. 일단 수혈 받고 가세요...
그리하여 다시는 소독하러 안 올지도 모르겠다던 5층 17호실로 다시 가게 되었다. 제법 친숙해진 간호사한테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린 모양이라고 말하며 실실 웃었다.
결국 밤 늦게까지 혈소판에 붉은 피에 퇴원 이래 처음으로 수혈을 했다. 내 히크만은 착하게 수혈 한번 없이 항암제 투여 세 번만 했다고 자랑했건만 역시 입찬 소리는 하는 게 아니다.
돌아오면서 문득, 이게 사고가 터져서 재발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경우가 된다면-치료과정에 일어나는것은 재발이 아니라 그냥 실패...- 백혈병에서는 예후가 굉장히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사태를 어쩌나... 다시 항암하고 골수이식 같은 거 하자고 하면 나는 그냥 거절하고 장엄하게-뭐래??!- 죽는 게 낫겠지... 흠... 이것저것 정리를 해야겠구나. -어째서 나는 포기가 빠른지는 모르겠지만- 죽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 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M3 유형이 사실 처음이 어렵고 그 이후는 워낙 예후가 좋은 것이라서 이렇게 막판에 뒤통수를 치는 건 내 케이스가 워낙 특이해서 극과 극은 통하기 때문인지도 몰러...
그리고는 모처럼 정말 쿨쿨 잘 잤다. 그리고는 정말 환장하게 추운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병원 행...
만약 수혈한 혈소판이 더 떨어져 있으면 그건 정말 위험한 것이다. 다행이 백혈구 호중구는 어제보다 더 떨어져 있었고 혈소판은 7만9천... 수혈한 효과가 남아 있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수혈하고 8만까지 올라갔던게 다음 날 만 팔천으로 다시 고공낙하....-
뭐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전체 수치가 바닥을 치는 과정인 모양이었나보다. 아직 백퍼 안심할 상황은 아니겠지만 주치의도 괜찮을 것 같다고-원래 별 말 안 해줌- 주말에 열나면 응급실로 오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오세요~ 했다.
역시 환자도 공부를 해야한다. ㅋㅋ. 설명 따위 1도 없었지만 뭐 대충 내가 한 상황파악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입원 중에도 그랬고 치료하는 동안 내가 주치의한테 들은 말은, 잘 되고 있어요. 잘 넘어갈 것 같아요. 잘 하고 있어요. 깨끗해요. 정도... 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문제 있느냐는 말에 그렇다고 했으니 긴장될 수밖에...
어쨌거나 어제의 수치는, 백혈구 1,000 호중구 90.
세 번의 공고 과정에서 보는 면역 최저 수치다. 호중구 수치가 저 정도면 감염위험이 장난 아닐 텐데 크게 열 나는 일 없이 잇몸과 치아만 더 심하게 아프다. 왼쪽 머리와 목까지 찌릿찌릿...항생제 처방받아서 먹고 있는 중.
제발 내일은 내 고맙고 착한 백혈구, 실실 힘 좀 내 보자. 입 아프다고~~
어쨌거나 롤러코스터 탔던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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