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병원 가는 날...
내려갔던 혈액수치가 오름새를 탔다. 2주 지났던 지난번 외래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은 걸 보면 갈수록 수치 회복이 더뎌지는 모양이다.
약이 몸에 축적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치의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할 때마다 골수는 데미지를 입는 게 당연할 거고 그래서 회복 속도가 늦어지는 것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정상치까지는 멀었지만 일단 수치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큰 이변 없는 한 잘 끝난 것.
하여 마지막 공고는 2 주후 외래로 잡혔다.
주치의는 유쾌하게, 각오하고 오세요. 감기 걸리면 안되고 내의 입고 다니세요~ 했고 나는, 으으 무섭습니다... 하하. 하고 나왔다.
이번엔 근육통은 적당했고-??- 입안이 좀 얇아졌고 혓바늘이 잠깐 돋았었다.
혈액수치 최저 찍은 날 미련하게 세탁기 정리대를 사와서 설치하느라 힘 썼더니 그날 밤 미열이 좀 나서 타이레놀 한 알 먹었고 이튿날 보니 생전 없었던 눈 실핏줄이 아주 조금 터졌었다. 코 풀때도 아주 조금 양쪽에서 피가 묻어나왔고-그동안 왼쪽 코에서는 실핏줄 한번 터진 적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피 봤다. 건조해서 그랬었나...- 뭐 크게 힘들지 않고 항생제조차 안 먹고 잘 지냈다.
물론 아직도 등산 다녀온 사람처럼 온몸 근육이 뻐근하긴 하지만 뭐... 견딜 만하다. 수치 올라가면서 골수 생성이 되고 있는지 오늘은 더 찌릿찌릿 욱신욱신...
잠의 질이 형편 없어서-갱년기 증세이리라- 몸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지만 문득 느긋하고 평화로운 날들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죄책감 들지 않고 삶에 미안하지 않고 일상에 부끄럽지 않다.
나는 우선 내 착한 백혈병을 토닥토닥 다스리고 있는 중이므로...
종종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왔고 찾아오는 제자들과 맛있는 것 먹으며 이바구를 하고 곰실곰실 보이지 않는 곳을 정리하며 보낸다.
냉장고에 잔뜩 먹을 것을 쟁여 놓고 양심의 가책 없이 먹어대기도 한다. -덕분에 퇴원하고 체중이 쌀 반 말 만큼 늚.-
저기 몸 어디 쯤은 분명 근력이 빠져서 버스 오를 때 좀 힘들고, 페트병 뚜껑 따기가 영 쉽지 않아서 할머니 근력이 됐구나... 실감하지만 이만하면 물흐르듯 흐르는 중이다.
내 치료과정도 일상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 삶도...
백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반으로 잡는다는 속담이 있던데 마음 함부로 놓지 말아야지.
이상하게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아진 것도 사실인데 마지막인 자벨 스 씨와의 조우를 위해 앞으로 두 주 동안은 또 열심히 에너지 비축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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