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엄니가 낙상을 했다.
운동하고 들어오시다가 그만 계단 한 칸 올라섰다가 뒤로 자빠지신 것이다.
우리 집은 계단 두 칸 올라와 다시 계단 두 칸 내려가야 하는 지층...
하여 많이 좋아지신 엄니가 보행용 유모차 끌고 운동 가실 땐 계단 오르 내릴 때마다 꼭 내가 같이 나갔다가 들어왔다. 하루에 많으면 네 번, 적으면 두 번...
엄니는 그게 미안하셨는지 종종 들어갈란다... 소리 듣고 뛰어 나가면 이미 계단 올라와 계신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사고는 한 순간이니까 엄니 생각하고는 다르다고 신신당부를 하곤 했었다.
주말에, 들어갈란다... 소리 듣고 -창문 열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면 엄니를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갔는데 내가 현관문 열고 나가는 순간 엄니가 계단 한 칸을 딱 올라섰는데 이미 불길했다. 엄니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벌러덩 뒤로 나가 자빠지셨는데 순가 나는 울엄니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다행이 머리보다 엉덩이가 먼저 닿았지만 그냥도 아니고 계단 위였으니 그 가중은 훨씬 컸을 것이다. 가장 걱정 됐던 것은 다른 쪽 고관절... 이 무슨 치명적인 사고인가!!
나는 엄니의 머리를 안아 올렸다가 그대로 내려놓은 후 잠시 그대로 누워 계시라고 했다. 움직일 수 있으면 잠시 몸을 굴러 일어서시라고 했더니 다행이 부축받아 힘들게 일어서셨다. 잠시 보행의자에 앉히고 나는 뒤에서 엄니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엄마, 엄니 울엄니...
간신히 계단엘 올라서고 방에 들어와 누우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건 기적같은 일이었다. 아무리 아드레날린 효과라고 해도 말이다.
다행이 누우니까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셨다. 이걸 119를 불러 응급실엘 가나 어쩌나 하는데 엄니는 누우니 하나도 안 아프니까 그냥 있어보자고 했다. 일단 고관절 수술 후 받았던 진통제-어떤 약인지 이미 다 알고 있어서 한동안 내가 팔꿈치가 아파서 먹기도 했다. 근육이완제랑, 소염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파스를 사러 갔다. 처방전을 보여줬더니 그냥 그거 먹어도 되고 그 정도면 응급실 가지 말고 기다렸다가 월요일에 정형외과엘 가도 된다고 약사가 말하길레 그대로 했다.어차피 종합병원 응급실 가야 전문의도 없고 돈도 많이 들고 게다가 그건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며...
그리고 엄니는 이틀 동안은 전혀 일어나 앉지도 서지도 못하셨다. 누우면 하나도 안 아프니까 화장실 뚜벅뚜벅 걸어갈 것 같다고 일어났다가 30초도 못 버티고 도로 누우셨다.
난 인터넷을 뒤져 척추압박골절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고 면밀하게 검색하고 연구하고 이해하고 알아냈다. 엄니는 골절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백 번도 넘게 통증의 강도와 척추 쪽의 압통 체크와 부위의 범위 따위를 물었다.
엄니는 현명하셨고 잘 참는 분이었고 폐끼치는 걸 싫어하는 분이니까 이 통증은 땅에 닿으면서 살이 부딫쳐서 아픈 것 같고 예전에 외할머니도 밤에 오랫동안 누웠다가 일어날 땐 못 일어나서 아예 밤을 새고 새벽밥을 했으니까 이렇게 누웠다가 일어날 때 아픈 것은 그 때하고 비슷한 거 보니까 내림이다. 지나 보면 나을 것 같다...하셨다.
우선 압통체크에 전혀 안 아프다는 것은 적어도 골절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에도 오래 누웠다가 일어날 때는 힘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압박 골절은 이미 있을 것이다. 새로 생긴 것 말고...
그래도 미세하게 금이 가거나 해서 방치하면 나중에는 재채기만 해도 골절이 된다는 말에 불안해서 엄니한테 킁킁 기침을 해보거나 숨을 크게 쉬어 보라고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수술비와 수술방법, 효과, 후유증 완치나 재활기간까지 모두 알아냈는데 어째 알면 알수록 더 불안했다가 또 증세와 맞춰보면 안심이 됐다가 이건 지옥과 연옥을 왔다갔다 했었다.
일요일이 되니 아주 조금 나아지셨고 월요일이 되니 조금 더 나아지셨다. 일어나 앉지는 못했지만 뒤척거릴 때 훨씬 유연해지셨기 때문이다.
이틀동안 엄니는 누워서 식사를 하셨고 소변도 누워서 보셨다. 엄니는 이걸 가장 힘들어 하셨다. 나는, 딸인데 뭐가 어떠냐고? 개않다고 했고 그리고 진심으로 내가 딸이라는 게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로 감사는 기쁘고 행복할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낮에 전국적으로도 대단히 유명한 우리 동네 정형외과엘 119를 불러 갔었다.-세상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다니... -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두 세개의 척추뼈가 내려 앉아 있었다. 하지만 뭐 의사가 아닌 내가 봐도 그건 오래 된 것이었고 노인들은 당연히 허리가 굽은 것은 그렇게 척추가 내려 앉아서 그런 것이고 시골의 농사 짓는 노인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다 알고 갔으니 전혀 낯선 그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는 이게 이번에 다친 것인지 분간할 수 없고 의외로 멀쩡해 뵈는 뼈가 이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굳이 엠알아이를 찍어 보자는 것이었다. 엑스레이만으로도 판독이 된다고 봤는데...
내가 알기로는 급성 압박골절은 그렇게 차분히 내려 앉아 있는 게 아니고 미새한 금들이 가 있어야 사고로 생긴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병원 사이트의 사진에 자세히 나와 있었다는-그렇지만 어쨌든 난 의사도 아니고 권위있는 의사도 잘 모르겠다니 MRI를 결국엔 찍었다. 결과는 멀쩡해 뵈는 뼈가 약간 거무스름하게 나왔는데 이래서 엠알아이를 찍은 것이라며 의기양양해 했다. 나는 놀라서 골절이 심해서 까맣게 나온 것이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고 피가 고인 것이란다. 헐!!! 내부 출혈은 시간 지나면 저절로 스며드는 거잖어?? 하고 소리 지르려다 아...네~~ 하고 말았다. 그럼 울엄니는 진단이 골절인가요?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더니 어... 그렇죠. 했다. 골절로 진단이 나오면 의보 적용되서 엠알아이 비용이 삼분의 일. 아니고 그냥 타박상이면 아마 풀로 다 내야겠지.깎아 줘서 오십 마넌...
뭐 어쨌거나 지금 수술하면-뭘?- 2백 팔심마넌 쯤 들고 진단 떨어지면 보름은 안정요법이라고 지난 후에 수술하면 보험 적용되서 삼분의 일 값이 된다는 것이다.
난 입원을 해야하나 어째야 하나 하는데 의사가 전혀 권하지를 않는 거였다. 집에 가셔서 안정 취하고 있다가 심하게 아프면 다시 오라며... 난 속으로 아하 울엄니는 수술대상자는 아니군 생각하며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약도 이런저런 연유로 있는데 개않냐고 했더니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처방전이 뭐냐면 무슨 파스 1회분이었다!!!!! 하루치도 아니고.... 하하하하하
누워서 와야 하는 관계로 사설 119 불러서 거금 오만원 주고 왔다. 기본이 75000원이라는데 가깝다고 깎아줘서... 참 친절하게도 울엄니 업어다가 침대에 눕혀줬다. 엄니는 업히니까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셔서 엄니, 남자한테 업혀서 그려요~ 하고 내가 킬킬 웃었다.
어쨌거나 한동안 엄니는 침대에서만 생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만하기 얼마나 다행인가!! 고관절 나갔을 땐 그냥 제자리에서 주저앉기만 했는데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에 비하면 이번 일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울엄니 가끔 방안에서 비틀 넘어지실 때마다 내가 조심 좀 하시라고 방방 뜨면 살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는 거지 갠찮어~ 하신다. 헐!!!!!!
엄니 누워계시는 동안 나는 식사도 떠 먹이고 음료수도 약도 일일히 다 입에 넣어 드렸다. 소변 본 후엔 물수건으로 울엄니 닦으면서 나는 나 애기였을 때 울엄니도 나한테 이러셨겠지... 하는 심히 인과응보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생에서 받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갚을 기회가 있으면 갚는 게 좋을 것이다. 베푼 것 따위야 다 잊어도 되지만 받은 게 있는데 다 내어놓거나 갚지 않고 가면 다음에 또 험한 세상에 태어나 빚갚기를 하게 될지도... 이 생의 삶을 보면 전생의 삶을 알 수 있다는데 대체 난 어케 된 걸까? 전생에 빚이 많았던 것인지 은혜가 많았던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