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저녁 어스름에 모처럼 성장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밤색 자켓에 카키색 스카프까지 하고는 혼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강남역까지 걸어가면서 영어학원에 들러 커리큘럼을 알아보고 지하 화장품 매장을 기웃거리기도 했지요.
사람들은 미어질듯 많았습니다.
결국엔 서점엘 들러 다른 책 몇권과 함께 오랜만에 전문서적-??!!- 한 권을 사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읽은 책이란 게 퀼트 책이거나 머리 가벼운 소설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에 관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작법책이란 게 초보자가 읽는 입문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만 저 책은 그런 초보적인 작법 책은 아닌 듯 합니다.
한 때는 죽기 전에 세계적인 시나리오 한 편 영어로 쓰고 죽어야지... 싶은 생각에 가당찮게 영어소설 따위를 읽겠다고 덤비기도 했었는데 톰 클랜시의 영화 비디오를 보면서 되도 않는 원작과 씨름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역부족 느끼고 금방 접었지만 말입니다. ^^;;
어쨌거나 시나리오 작법 책 보면 시나리오 쓰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법 책으로는 수영을 할 수 없듯 말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나리오를 써 보는 것이고, 물에 들어가 허우적거리는 것이겠지요.
시나리오 쓰겠다는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습작을 하거나 그거에 늘 골몰하고 있지도 않아서 그냥 경각심 차원에서 불쑥 샀는데 의외로 재밌습니다. 다시 불끈불끈 의욕이 솟는게 허접하게라도 대사 위주의 글-희곡, 시나리오, 드라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옛날에 써 놓은 누렇게 빛 바랜 것들은 차분이 꺼내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뭐 죽기 전에 인구에 회자되는 시나리오 같은 거 쓰는 일은 물론 안 이루어질 것입니다.
영화의 본질적인 속성인 꿈 혹은 환상이란 거에 마음 비우고 발가벗은 채로 들어가기엔 나란 인간이 지나치게 진지한 성격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꿈은 얼마나 아릅답고 설레게 하는 지 모릅니다. 하여 한동안은 나를 설레게 하고 다시 불끈 의욕속으로 빠뜨릴 책입니다.
책을 사고 어슬렁거리다가 며칠동안 먹고 싶었던 만둣국 한 그릇을 먹고는 네 번째 맘마미아를 보고 왔습니다. 제법 심야였는데도 사람들은 꽤 많았고, 이전 영화와는 다르게 싱어송 버젼으로 노래들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자막처리를 해 놔서 나름 신나게 발 구르며 따라불렀습니다. 봐도 봐도 여전히 유쾌한 영화입니다.
지난 주 친구들이 모였을 때 영화이야기가 나왔는데 모두들 느낌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비슷할 수가 있을까 싶을만큼...
하여 고민은 DVD 타이틀로 나오면 어떤 걸 살까 고민이 됐다는... 아니면 편집적인 인간이 분명한 나는 올 번역판, 싱어송 버젼, 그리고 자막 없는 오리지날 버젼... 뭐 이렇게 세 종류를 다 살지도 모르지요. -돈이 튀는군-
한 참전에, 밤 열 한시 쯤 어슬렁거리며 나가서 시네하우스에 들러 혼자서 해리슨 포드의 영화를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거의 두시 쯤 되는데 극장을 나서면 8차선이 넘는 도로에는 차들이 드문드문 다니고 나는 영화내용을 음미하며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서 집엘 왔지요. 그 때 두어 번 씩 본 영화가 랜덤 하트였을 것입니다. 포드영화치고는 좀 쪼다같았는데-??- 느닷없이 그에게 빠져서 한참 열광했었지요.
뭐니뭐니 해도 혼자 본 영화의 압권은 지금은 없어진 강남역에 있던 재 개봉관에서 본 블레이드 러너일 것입니다. 너무나 음울한 화면에 주인공 데커드역의 해리슨 포드의 우울한 표정도 압권이었고, 영화 속에서 우중충하게 산성비가 줄창 내렸는데 영화 끝나고 나오니 역시나 비가 주룩거렸습니다. 극장에 손님은 나를 포함해 다섯 명도 정도였었지요.
서른에 막 들어섰던 무렵이던 그 때, 영화와 현실과 내 느낌이 삼위일체를 이루었던 우울의 트리플 버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혼자서 씩씩하게 매표소에 들러, 뱅글거리며 혹시 통신사카드 할인이 안되나요? 묻기엔 지나치게 나이먹은 게 확실하지만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불쑥 지나가다 영화보러 들어갈 수 있는 내가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하하.
혼자 할 수 없는, 혹은 못하는 게 많으면 그만큼 혼자 사는게 괴롭고 힘들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그 시간에 마실 온 듯한 차림으로 영화 보러 온 부부들이 꽤 있었는데 괜히 좋아보여서 착한 며느리 보는 선한 시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
모르는 일입니다. 불쑥 땡기면 다섯 번 채우기 위해 보러 들어갈 지도...
드디어....
다 완성한 이불입니다. 주말 내에 수업이 있어서 집중할 수 없었고, 생각보다 퀼팅이 오래 걸렸는데 손에서 쥐날 지경이었습니다. 어제는 이사한 친구네 가기로 한 것이 캔슬되는 바람에 집에서 저걸 끝내고야 말았습니다. ^^
침대에 펴 놨는데 너무 요란하긴 해도 확 생기가 도는 게 아주 �습니다.
지난 번에 만든 베개와 함께...
베개가 안 어울려 남은 천으로 세트 만들까 하다가 너무 어지러울 것 같아 그냥 초록에 포인트로 배색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미소니풍도 아니고 피카소나 고갱풍고 아니고 겐죠풍이라고 어떤 애가 그러는데 풍이고 뭐고 간에 나일 먹었는지 원색이 꽤 역동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언젠가 알라들이 슬쩍 방문 열어보고, 선생님 생긴거와 다르시네요~~ -생긴거라는 건 내 말이고, 보이는 것 하고는 다르다고 했다- 했던 기억이... 그게 욕이었는지 칭찬이었는지 감이 안 잡힌다는... ^^;;
어떤 녀석은 선생님 방 호텔 같아요~~ 하더라는... 혹 모텔을 잘못 말한 거 아니냐?? 낄낄낄
사진 찍느라 광목천 씌워놨던 사이드 테이블 치웠는데 광목천 대신 저 화려한 색 이불을 누를만한 색이 뭘까 생각중입니다. 체크배색 넣어 만들려고 했는데 영 안 어울릴 거 같고...
원래 사이즈대로 하면 너무 짧을 것 같아서 나름 머리 써서 길이를 늘렸습니다. 좀 더 작은 조각으로 이어볼까 하다가 너무 오래 끌고 있는 것에 질려서 그냥 대충...
저거 불쑥 사올 때 퀼트 하우스 주인은 그냥 주욱 잘라서 미싱으로 박으면 쉬워요~~ 했는데 그냥 주욱 잘라지지도 않았고-일일히 50센치 자로 폭과 길이 재고 시접 넣었었다- 가운데 그림의 새싱까지 계산하면서 마름질을 하려니 몇 시간 더하기 빼기 나누기 까지 했었다는...
흔히 퀼트로 이불을 만들면 너무 아까워서 덮지도 못하고 잘 깔아 놨다가 정작 잘 때는 바닥에 내려놓고 아침에 다시 고이 접어 놓는다면서 하하 웃었는데 아마 예전같으면 나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쑥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에 뭐 그리 아끼나 싶어서 만든 후 그냥 냅다 덮고 잤습니다.
나이 먹어 생각이 자꾸 변하는게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그렇게 우리네 가는 길엔 뜻하지 않은 얼굴들로 불쑥불쑥 내미는 것들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서른엔 서른에 만나는 풍경, 마흔엔 마흔에 만나는 풍경, 그리고 쉰엔 다시 쉰에 만나는 풍경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훨씬 잘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내게 주어진 '풍경'도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가서는 뭐 별 게 없잖아!! 하고 실망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제 끝내야겠습니다.
아이들 공부하러올 시간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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