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책상에 관한 소고.... 나는 책상이 좋다.

오애도 2002. 3. 11. 01:18
엊그제 새로 책상과 의자들을 샀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가로 120, 세로 90자리 책상이 단돈-??- 육만원에 불과합니다.
왜 단돈이라는 표현을 썼느냐 하면 지금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책상은 8년 전 쯤에 이십만원 넘게 주고 산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장식없이 넓적한데다 둥그렇고 굵은 다리만 네 개 달린 것을 롯데 백화점의 DIY숖에 가서 샀었습니다.
가로 세로가 150, 60짜리 규격인데 그걸 샀을 때 어찌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한없이 단순하고 넓직하고 평화로운 상판 위에 책을 올리고 스탠드를 올려놓으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말레이지아 산 원목을 재료로 한 탓에 그 전의 나무인 체 하고 있는 합판으로 만든 어린이용 책상에 비해 그건 얼마나 묵직하고 듬직하던지요.
집에 있을 때 하루의 거의 전부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터라 책상은 정말 내 몸의 일부 같습니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나는 혹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묵직한 책상과 편안한 의자, 그리고 원목으로 짠 튼튼한 책장을 혼수 제1호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책상과 책장에 집착을 합니다. -음... 울 이모부가 목수이신데 결혼 부조로 튼튼한 책장을 약속 받았는데 에고 아직도 안가고 있으니 언제 받을지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걸 받자고 시집갔다 다시 올 수도 없고...^^- 전생에 나는 책상 없어서 인생이 망가졌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

어쨋거나 넓은 새책상을 방에 들여놓으니 방이 꽉 찼습니다.
기존에 있던 책상은 컴퓨터 책상과 ㄱ자로 꽉 틀이 잡힌 터라 아이들이 오면 바닥에 앉아 교잣상을 펴고 공부를 하는데 요새 아이들이 영양상태가 워낙 좋아서 체격들이 얼마나 큰지 한 삼십분 앉아 있으면 발이 저리고 다리가 저리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큰 책상을 사야겠구나... 했더니 아니예요, 선생님 괜히 돈쓰지 마세요 하더군요.
오잉!! 이렇게 착하고 기특한 녀석들이 있다니... 체격만큼이나 속도 깊구나... 그렇다면 내가 덜먹고 안 쓰고라도 더 사야지^^ 하고는 사무용 가구점에 가서 샀던 것입니다.
접는 의자 두 개 오만원-집에 두 개 있으니까- 이래서 합이 십일만원을 들였습니다.
오늘 그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훨씬 편안해 했고 그런 그 아이들을 보는 내 마음도 삼십만원어치는 기쁘고 편안해졌습니다.

이 책상은 엷은 갈색의 상판에 튼튼한 스테인레스 다리를 가진 심플하기 짝이 없는 책상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전생에 책상과 깊은 원한이 있는 탓인지 왜그리 다리가 네 개고 넓직한 테이블만 보면 행복해지는 것인지...... 그런 이유로 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얘기 할 때도 푹신한 소파보다는 딱딱한 나무다리를 가진 식탁의자가 훨씬 좋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인간관계는 훨씬 편안하게 동등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내 사주를 풀면 전체적으로 불(火)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이 살기(生)하기 위해서는 나무(木)가 필요한 터라 그리 목재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또한 목재가 나한테 잘 맞기도 하는 것이구요.
물론 새로 산 책상은 나무는 아니고 나무의 탈을 쓴 무슨 합성수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좀 더 따땃해지면 이거 옥상에 들고 나가 바람과 햇빛 맞으며 책 읽고 밥 먹고 차마시고 공부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공부 끝나면 다리 분리해 밖에 세워놓아야 하는데 그게 꽤나 무거워 고생 깨나 할 것 같습니다.

어쨋거나 산다는 게 기쁩니다.
이렇게 큰 돈 들이지 않고 이십년은 너끈히 쓸 수 있는 책상을 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주 어릴 적 다 낡아빠진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등잔불에 머리 그을리며 책 보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과 같은 시대가 아닐는지......

그러나......
가끔 세상은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소원 때문에 정말 가치 있게 써야 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