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그래피티...21

오애도 2007. 12. 20. 11:02

정말 아무 것도 안 해도 좋은 날이다.

말하자면 약속도 없고, 일도 없고, 특별히 결심해 놓은 것도 없는 날... 해야할 일이라곤 베이지 색 퀼팅실 사러 퀼트 하우스까지 갔다 오는 일 뿐이다. 퀼팅실 없으니 퀼팅해야 하는 하트 아플리케 가방 만드는 일도 스톱해야 하는데 그 전에 스트라이프 지갑이라도 하나 만들까 생각 중이다. 아니 뭐 이렇게 빈둥대는 것도 괘않다.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바느질한 당신 빈둥대라!! 이다. ㅋㅋㅋ

 

 

보라색 카드 지갑에 이어 만든 빨간색 카드지갑... 생각보다 이쁘다. 선물용이라서 지금은 내게 없다. 자꾸 빨간색이 이쁘고 좋아진다.

 

                   

 

 

이건 뒷면....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는 하트 아플리케 가방... 색감도 형태도 맘에 든다. 열심히 흰색으로 퀼팅해 놨다가 아무래도 아니어서 베이지 색 실로 바꾸려고 죄 튿었다. 아플리케도 다분히 중독성이 있어서 매끈하고 예쁘게 접어지면 카타르시스다. 보기보다 섬세한 오애도!! 하트 아플리케는 제법 선수급^^;;

그런데 솜이 7온스 퀼킹솜인지라 두껍고 뻣뻣해서 손에 쥐가 날 지경인데다 촘촘한 퀼팅이 무쟈게 어렵다.

 

                   

 

 

 

어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살고 있은 울 작은 오빠가 왔었다. 씩씩하고 튼튼하게 커가고 있는 조카녀석과는 달리 수심 가득한 오빠 얼굴이, 피가 무섭다고 울컥하니 맴이 아팠다.

문득 내 얼굴을 보더니 울오빠...

너 왜 이렇게 늙었냐?g

 

사람을 앞에 놓고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사실진술은 대부분 질시와 비꼼과 눈치없음과 천진함과  매너없음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걸 듣는 순간 저 여러가지 의도 중에 어떤 걸까를 알아내는데 나란 인간은 명민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이니까 알아내는데 물로 일초도 안 걸린다.

 

따라서 울오빠의 너 왜이렇게 늙었냐? 라는 사실진술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알아내는 것도 일초도 안 걸렸다.

거기엔 어릴 때 봤던 풋풋한 여동생의 이미지대신 이제는 허름하게 나이 먹고 제법 주름 자글거리는 중년의 여인네가 돼있는, 시집도 못-???-가고 있는 동생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과 애틋함과 슬픔이 서려 있는 썰렁한 사실진술이라는 것을...

나는 하하 껄걸 웃으며 말햇다. 사돈 남말하지 마... 오빠도 늙었는데 뭘... 그리고 낼모레면 오십인데-반올림이 심하군- 늙은게  당연하지. 그럼 내가 아직도 열 네살인 줄 알어? 킬킬

 

어느 날 울엄니랑 전철 탔을 때, 어떤 젊은이가 울엄니더러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했을 때 나는 생각했었다. 쟤가 왜 울엄마더러 할머니라고 하는겨????

그리고 내어머니를 돌아봤을 때 느꼈었다. 아하!! 울엄니가 할머니구나... 엄마는 엄마, 오빠는 오빠, 내동생 애도는 애도... 로만 느끼는 가족이미지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난 아직도 울엄마 건강하고 씩씩하고 강인한 울엄마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훨 많다. 아마 울오라버니도 그저 씩씩한 내 여동생이 문득 보니 후줄근하게 혼자 사는-이게 아마 가장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중년의 여인네로 보여지는데 충격을 받았으리라!

 

그런데 어쩌랴!!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혹은 오빠가 사는 것보다 그 마흔 네 배쯤 나는 행복한데 말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내가 알고 있는, 믿고 있는, 보고 있는 기준과 잣대로만 타인과 세상을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고난과 고뇌의 연속임이 분명한데 그저 시집도 못가고 혼자 살고 있는 여동생때문에 한숨 쉬는 오빠를 보면서 나는 쓸쓸해서 옷었다.

 

나 대학 합격해놓고 등록금이 없어... 라고 했을 때 아뭇소리 안 하고 선뜻 내 줬던 착한 오빠다.

지금까지 남에게 나쁜 일 하고 살지 않았던 울오빠는 알고보면 지지리 운도 복도 없는 사람이다. 어떤 민담이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데 그 오랜 민중의 믿음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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