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아이가 하나 들어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따-전부 따돌림-란다. 시작하기 전에 엄마 말이 가슴에 칼자국이 죽죽 났다길레 그게 물리적인 걸로 알아듣고 깜작 놀라기도 했지만 막상 상담하러 왔을 때는 별 문제 없어 보였다.
공부 시작하는 날 먼저 하던 아이들이 그 아일 보고 놀라고 저희들끼리 쑥덕거리고 입 삐죽였다.
공부하는 내내 지켜봐도 별 문제 없었다. 다른 애들보다 대답이 좀 빨랐다. 그런 아이는 어디든 있는데 이 아이는 그럴 때 마다 다른 아이들이 표정이 샐쭉해졌다.
먼저 시작했던 셋은 같은 초등학교이고 새로 온 아이가 학교가 달랐는데 중학교엘 가면서 새로 온 아이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그대로 중학교에서 가서도 그야말로 '따'를 시킨 것이고 다른 학교에서 온 아이들한테도 초등학교 때의 전과-?? 뭔지는 모른다-로 주욱 따돌림을 시키고 있는 듯 했다. 세 아이들은 이유도 없이 쑥덕거리는 터였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가장 오래 했던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니가 보니 ㅇㅇ 이 문제가 있니?"
"잘 모르겠어요"
"그럼 그 애를 대하는 태도가 왜그래?"
" 그냥 그애 ㅇㅇ 초등학교에서 전따였데요"
"왜?"
" 몰라요. 남자들이 말 시키면 자기 좋아한다고 그러고 뭐 싸우기도 하고 그랬데요"
"단지 그거 때문이라면 그건 너무 나쁜 짓이다. 쟤가 도둑질을 하는 것도 사람을 패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파렴치한 짓을 하거나 공부를 방해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너희들은 겪어보지오 않고 그런다는 것은 편협한 거야. 같이 공부하는 동안 서로 째리거나 야리거나 패가르는 짓은 하지말자. 정말 너희들 생각처럼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라면 선생님이 조처를 취하마. 그러니 너희들은 그러지마라. 죄 받는다. 사람은 내가 한 짓 언젠가 나한테 그대로 돌아오는 거란다. 부모님이 얼마나 슬프시겠냐? 너희도 언젠가 부모가 될텐데..."
"네"
언젠가 아이들한테 보통 '따'를 당하는 애는 어떤 애냐고 물었더니 지나치게 잘난 척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뭐 내숭을 떨거나 그런 정도였다. 또 지나치게 내성적이어서 말 없는 경우도 있고...
지금까지 오년 쯤 가르치는 아이가 하나 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종종 천재소년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이가 그랬다. 초등학교 다닐 때 그야말로 아는 게 많은 아이는 어떤 문제나 사실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술술 선생님보다 많이 애길 했는데 그게 그야말로 아이들한테는 잘난척이요. 선생님한테는 나름 학생들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아이나 엄마는 당연히 그것때문에 받은 상처가 남달랐을 것이다. 난 물론 그 아이가 잘난 척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저 참외를 보고 참외라고 하고 참외의 성분과 왜 그 색깔이 나는지까지 말하는 것을 자제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었다. 물론 어느정도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야 너 뛰어나구나 하겠지만 글쎄...
나중에 내가 물었었다.
"넌 정말 잘난 척을 하는 거냐?"
"아뇨. 그냥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거죠"
"그럼 니가 생각하는 잘난 척은 뭔데?"
"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거나 과시하기 위해서 말하는 거요"
" 너 그러니?"
"아니 그냥 아는 것을 말하는 것 뿐이예요"
"근데 얘야. 아는 것을 다아 말하고 살 수는 없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릴 뻗으라는 말이 그럴 때 있는 것이란다. 사람들은 아는 걸 다 말하는 사람은 잘난 척이라고 보려고 하고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없거나 모자란다고 하거든. ㅋㅋ. 그러니 앞으로 눈치 봐서 알아들을만한 사람들 있는데사 '잘난 '척'을 하거라."
다행히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몇몇 선생님으로부터 유달리 아낌을 받는단다. 그리고 분명 그 아이는 초등 육년을 '따'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학원 선생이 됐을 때 오학년 여자아이가 하나 들어왔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야말로 따를 시키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공부는 못했고, 머리는 길러서 하나로 묶었지만 거의 수세미였으며 목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었었다. 말하자면 좀 지저분한 아이였는데 부모님이 중국집인가를 하고 있었다. 학원 오는 길에 늘 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왔는데 나는 장난으로 그걸 꼭 나좀 주라.. 하고 뺏어 먹었다. 나중엔 사오면 으례 뜯어서 내 앞에 먼저 내밀곤 했다. 공부는 별로 못해서리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뭐 나름 성실했다. 다른 친구들하고 못 어울려서 종종 내가 데리고 이런저런 말을 시켰고, 수업 시간에는 반드시 지적해 다른 애들과 똑같이 영어단어를 외게하고 말하게 하곤 했었다. 너도 할 수 있어.... 하면서...
글쓰기 지도도 같이 했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점점 나아지는 게 없이 그저 술술 있었던 일만 써놓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어찌어찌한 사연으로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을 때 그 아이가 불쑥 물었다.
"언제까지 나오세요??
"왜?"
"선물 드릴려구요"
"괜찮아"
"저도 이사가서 학원 못다녀요"
그리고 그아이가 마지막 오는 날 포장된 상자와 함께 편지를 내밀었다. 상자에는 작은 유리병에 다 채우지 못하고 접은 학 몇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걸 내밀면서
"어젯밤에 접었는데 다 못채웠어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했다.
문앞에 나와 잘가라... 하는데 선생님 얼굴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돌아보고를 했다. 난 아직도 뒤돌아보며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편지는....
지금까지 받아 본 어떤 편지보다 감격스러웠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칠 때 안 되던 문장이 문제 하나 없이 꼼꼼하고 완벽했다.
'선생님 선생님보다 제가 먼저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네요... 시작됐던 그 편지... 어쩌면 그렇게 마음씨가 고우세요-난 이말이 어떤 누구한테 들었던 칭찬보다 고맙고 감동적이다-... 앞으로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요... 로 끝맺었는데 나는 그 아이가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처음 싸이라는 걸 시작 했을 때 사람찾기로 들어가 그 당시 나이를 짐작해 찾아봤던 아이가 그 아이다. -
아직도 그렇게 이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그 종이학 몇마리가 담긴 하트모양 병을 간직하고 있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느라 들고 다니다 지금 어딨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책갈피 어딘가 있을 것이다.
여하간 그 아인 분명 왕따였다. 몸을 씻고 다니지 않아 지저분하고 공부를 못하는 거 빼면 되바라지지도 꼬이지도 사납지도 않은 착한 아이였고, 저에게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는 것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을만큼 마음이 맑은 아이였다.
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분명하게 믿고 있다.
가장 애다운 애가 어른다운 어른이 된다고... 지금쯤 그 아이는 그 홀쭉하고 가느다란 몸매로 어딘가서 예쁘게 자라 거리를 누비고 다닐 거라 믿고 있다. 까짓 공부 좀 못한들 무슨 상관이랴~~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꽤 어릴 때 왕따 기질이 다분한 인간이었는데 -뭐 좀 지저분하게 코를 질질 흘리고다녔고, 아는 거 많아서 선생님 질문 떨어지기 전에 대답 먼저 나왔다. 하지만 울 선생님은 너도 모르는 게 있냐? 하실만큼 나를 인정해 주셨다 ^^;;- 내가 미련해서 못 느낀 것인지 그런 걸 당해 본 기억은 없다. 뭐 나란 인간이 어릴 땐 좀 맹~~ 해서리 누가 못났고, 누가 공부를 잘 하고, 누가 얄밉고 뭐 이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가끔 친구들이 뒷담화로 야, 걔는 너무 얄밉지 않냐... 하는 얘길 들으면 뭐 걔가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을 니중에 해 보곤 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는는 거라면 바로 사람 갖고 장난치는 것이다. 그것이 물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인든, 성향적인 특성이든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해 그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비 인간적인 폭력이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거짓이나 편견은 집단 광기처럼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아이가 잘 이겨내길 바란다. 이제 겨우 열 네살인데 무얼 그리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종종 느낀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선함'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성악설이 맞는다.
10년 전에 받은 종이학 몇 마리가 든 하트모양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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