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지난 주말...

오애도 2007. 4. 4. 15:56

발작처럼 허무와 우울감이 찾아 왔었습니다.

며칠 째 비는 추적거렸고, 이상하게 수업은 캔슬이 되어서리 종일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지요.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모든 게 다아 깜깜해지지고 막막해졌던 것입니다. 책상 위 어항에서 노는 물고기조차 넌 살아서 뭐하냐. 산다는 게 다 무엇이냐. 잘 산다 한들 그건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죽은믄 어떻고 살믄 또 뭐 그게 대단하랴... 싶었지요.

그렇게 그냥 이유없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안고 책상 앞에 앉아 바느질을 했습니다.

 

거실의 싸이즈 안 맞는 로만쉐이드 대신 커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몇 년 전 내마음의 옥탑방에 살 때 넓은 창에 커튼 하려고 사놨던 광목천을 꺼내 마름질을 했습니다.

원래는 빨간 색 하트를 수놓아서 가방을 만들까 하고 잡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대충 끝단만 접어 넣어 압정으로 눌러놔야지 했었는데...

열심히 시접 그리고 다림질 하고 마름질해서 꿰맸더니 아뿔싸!!! 한 십센치 쯤이 짧아서 대충 맞춰보니 다 자란 계집아이 어릴 때 치마 입혀놓은 것처럼 딸롱한 것이었습니다.

하여 열심히 꿰매놓고 월요일날 가서 초록 바탕에 빨갛고 흰 자잘한 꽃무늬가 있는 퀼트 배색천 한 마를 사왔습니다. 분명 폭이 120센치인 걸 재서 갔는데 쥔장 하는 말이 모든 천은 110이라길레 내가 잘못 쟀지 싶어서 그냥 사들고 왔더만 흐미... 광목천은 120, 배색 천은 110..... 하여 그걸 다시 60센치씩 그리고 시접을 넣고 이어 붙여서 드디어 커튼을 완성했습니다. 순전히 혼자 디자인하고-??- 혼자 꿰매고 혼자 달았습니다.

미싱으로 박으면 드르륵... 마름질과 재봉까지 30분이면 끝날 것을 다섯 시간 이상-아니 끝단에 만들어 단 하트까지 따지면 3박 4일- 붙들고 씨름해서 완성했습니다.

사진이 흐릿하게 나와서 진가-??-을 보기 어렵겠는걸요. ^^;;

 

 

 

 

 

 

일상이, 혹은 삶이, 또는 미래가... 하여 사는 게 허무하다고 느낄 때 만든 것 치고는 상상외로 자알 나왔습니다.

 

미싱으로 드르륵이면 한 시간 이내에 끝낼 것을 몇시간이고 몇날이고 걸렸지만 '손'으로 만든 저 '헝겁' 근처에는 몽실하고 따뜻한 뭔지 모를 공기가 오랫동안 떠 다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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