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속초엘 다녀왔습니다.
강릉엘 가려다가 터미널에서 방향을 틀어 속초로 향했습니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리도 소리려니와 바다가 보고 싶었습니다.
버스 타고 가며 보니 서울 근교의 산은 아직 단풍은 먼 듯 했고, 39도쯤 열 오른 아기 볼따구니처럼 발그레할 정도였습니다.
파삭파삭한 공기의 질감이 느껴졌고, 빛나지만 식어가기 시작한 햇빛이 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원도 가는 길에 만나는 산과 들은 아기자기한 수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속에 어떤 비극적인 내용들을 품고 있다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잔잔하고, 소박하고, 시달림 없이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수필 말입니다.
근엄하게 뻗어있는 도로 옆으로 착하게 누워 있는 손바닥만한 밭이며, 조용히 솟아 있는 무덤들, 엄숙하게 서있지만 따뜻해 뵈는 산들, 그 사이를 누비는 가늘지만 질긴 물줄기들...
끊임없이 전나무 숲이 이어지던 로키산맥 가던 캐나다의 거대하고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산 모양에 비하면, 잡목이 어울어지고 마치 길 위를 달리는 우리들을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으로 가까이 서 있는 그것들은 얼마나 다정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안기듯 나타나는 나지막한 집들, 그리고 사람들... 어찌하여 나는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네시간을 달려 속초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속초 해수욕장으로 달려갔지요. 잔뜩 흐린 날씨 탓에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나는 그 중에서도 더 사람 없는 곳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멍청히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다 봤습니다. 먼 데 바다는 꼼짝도 안하고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데 파도는 끊임없이 흰 거품을 몰고 와 모래사장에 부려 놨습니다.
와인색 배낭을 모래 위에 내려놓고 개나리색 윈드 브레이커를 입은 채로 노랑 병아리처럼-닭이 아니고^^;;- 혼자서 열심히 놀았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 뒷걸음쳐 달아나는 짓도 하고, 모래를 집어 괜히 바다를 향해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자고 올때를 대비해 들고 간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도 실실 읽고 그러다 지겨우면 아침에 싸가지고 간 못난이 김밥을 꺼내 먹었습니다.
아침에 떠나면서 들고 갔던 조간신문을 깔고 앉았는데 마침 김병종의 화첩 기행 마지막 회가 실려 있어서 그것도 꼼꼼히 읽었습니다.
흐린 날씨 탓에 하늘 색깔과 바다 색깔은 회색이 잔뜩 섞인 엷은 비취색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에 희미하게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엄지손가락으로 쓱쓱
문지르면 없어져 버려 바다와 하늘을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멍청히 앉아 있으면 바다는 오로지 나만의 것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바다를 향해 히죽이 웃어 보아도 누구하나 알아채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세 시간쯤을 놀다가 터덜터덜 걸어서 속초시내로 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였는데 역시 걷는 사람은 나 혼자인지라 아주 조용했습니다.
시장에 들러 그 유명한 속초 젓갈도 몇 가지 사고, 젓갈 파는 아줌마한테 여기서는 뭘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요? 했더니 1번이 생선회였습니다.
나는 그 회라는 것은 당최 맛의 진면목을 모르겠는지라 그거 말구요 했더니 2번이 감자 옹심이였습니다.
식당까지 알려 줬는데 가보니까 주인 아줌씨가 자리를 비운지라 지금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하더만요.
또 다른 집엘 갔더니 그 집은 문을 닫았고 다시 생선 구이를 먹겠다고 갔더니 첫 번째 집에서는 단체 손님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거절! 에고 밥먹기가 왜 이리 힘든겨... 그냥 남은 김밥이나 먹고 말어?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생선 구이정식을 먹긴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젓갈 든 봉지를 흔들며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와서 서울 오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옆으로 컴컴한 밤바다를 끼고 달렸습니다.
여전히 파도가 쉬임 없이 밀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포말은 섬뜩하리만치 흰색을 띠었는데 바라보고 있자니 묘하게 무서워지더군요.
마치 검은 머리 풀어헤친 소복입은 여인네가 어둠 때문에 검은 머리채는 보이지 않고 흰 소복만 드러낸 채 무더기로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 읽은 책 중에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경탄해마지 않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나오는 "불 밝힌 열차가 시끄러운 유령처럼 지나가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깜깜한 들판에 서서 불밝힌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시끄러운 유령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밤 바다의 그 흰파도는 소리없이 무더기로 다가오는 소복입은 여인네들이었던 것입니다. 으스스 프스스^^ 밤바다는 무서버...
그렇게 일곱시간을 머물렀던 여행은 끝났습니다.
왕복 차비만 사만원이 넘게 들었는데 겨우 일곱시간이라니, 돈 아깝다는 생각 안드냐고 친구가 어이없어 했습니다.
사실은 그 어이없는 짓은 가끔 했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하는 일이 변변찮을 때...
아마 이번이 네 번째 일 것입니다. 그것도 늦가을이거나 초겨울이었습니다.
그렇게 내려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땐 해장국 한 그릇, 어느 땐 오징어 튀김 한 봉지 먹고 왔던 여행 말입니다. 시간에 쫓길 때는 겨우 한시간을 머물다 온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청량리에서 밤차를 타고 갔는데 내 성질이 더러버서 차안에서는 거의 잠을 못 자는지라 돌아 올 때는 그야말로 소금에 절인 배추 꼴이 되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아예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머물렀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없다거나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여행은 길 위에 있을 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족: 속초 앞 바다에서의 에피소드
식당과 노래방 이 같이 있는 건물 앞에 남자가 서성거린다.
나: (그냥 들어가기 미안해서) 저....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어요?
남자: (멀뚱히 보고 있다가) 아... 피엔소 (손가락으로 오른쪽 입구 가리킨다)
나: (방백) 여긴 아직도 변소라고 하는 모양이야 킬킬. 감사합니다
하곤 들어갔는데... 오잉 중국 관광객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아뿔사 아까 그 남자는 그 여자 중국 관광객 기다리는 남편이거나 뭐 그랬던 것입니다.
에고 하필 외국 관광객한테 화장실을 묻다니... 우째 이런일이...
그래도 그 아자씨 눈치 한 번 빠르데요.
강릉엘 가려다가 터미널에서 방향을 틀어 속초로 향했습니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리도 소리려니와 바다가 보고 싶었습니다.
버스 타고 가며 보니 서울 근교의 산은 아직 단풍은 먼 듯 했고, 39도쯤 열 오른 아기 볼따구니처럼 발그레할 정도였습니다.
파삭파삭한 공기의 질감이 느껴졌고, 빛나지만 식어가기 시작한 햇빛이 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원도 가는 길에 만나는 산과 들은 아기자기한 수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속에 어떤 비극적인 내용들을 품고 있다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잔잔하고, 소박하고, 시달림 없이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수필 말입니다.
근엄하게 뻗어있는 도로 옆으로 착하게 누워 있는 손바닥만한 밭이며, 조용히 솟아 있는 무덤들, 엄숙하게 서있지만 따뜻해 뵈는 산들, 그 사이를 누비는 가늘지만 질긴 물줄기들...
끊임없이 전나무 숲이 이어지던 로키산맥 가던 캐나다의 거대하고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산 모양에 비하면, 잡목이 어울어지고 마치 길 위를 달리는 우리들을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으로 가까이 서 있는 그것들은 얼마나 다정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안기듯 나타나는 나지막한 집들, 그리고 사람들... 어찌하여 나는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네시간을 달려 속초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속초 해수욕장으로 달려갔지요. 잔뜩 흐린 날씨 탓에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나는 그 중에서도 더 사람 없는 곳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멍청히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다 봤습니다. 먼 데 바다는 꼼짝도 안하고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데 파도는 끊임없이 흰 거품을 몰고 와 모래사장에 부려 놨습니다.
와인색 배낭을 모래 위에 내려놓고 개나리색 윈드 브레이커를 입은 채로 노랑 병아리처럼-닭이 아니고^^;;- 혼자서 열심히 놀았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 뒷걸음쳐 달아나는 짓도 하고, 모래를 집어 괜히 바다를 향해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자고 올때를 대비해 들고 간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도 실실 읽고 그러다 지겨우면 아침에 싸가지고 간 못난이 김밥을 꺼내 먹었습니다.
아침에 떠나면서 들고 갔던 조간신문을 깔고 앉았는데 마침 김병종의 화첩 기행 마지막 회가 실려 있어서 그것도 꼼꼼히 읽었습니다.
흐린 날씨 탓에 하늘 색깔과 바다 색깔은 회색이 잔뜩 섞인 엷은 비취색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에 희미하게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엄지손가락으로 쓱쓱
문지르면 없어져 버려 바다와 하늘을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멍청히 앉아 있으면 바다는 오로지 나만의 것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바다를 향해 히죽이 웃어 보아도 누구하나 알아채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세 시간쯤을 놀다가 터덜터덜 걸어서 속초시내로 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였는데 역시 걷는 사람은 나 혼자인지라 아주 조용했습니다.
시장에 들러 그 유명한 속초 젓갈도 몇 가지 사고, 젓갈 파는 아줌마한테 여기서는 뭘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요? 했더니 1번이 생선회였습니다.
나는 그 회라는 것은 당최 맛의 진면목을 모르겠는지라 그거 말구요 했더니 2번이 감자 옹심이였습니다.
식당까지 알려 줬는데 가보니까 주인 아줌씨가 자리를 비운지라 지금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하더만요.
또 다른 집엘 갔더니 그 집은 문을 닫았고 다시 생선 구이를 먹겠다고 갔더니 첫 번째 집에서는 단체 손님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거절! 에고 밥먹기가 왜 이리 힘든겨... 그냥 남은 김밥이나 먹고 말어?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생선 구이정식을 먹긴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젓갈 든 봉지를 흔들며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와서 서울 오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옆으로 컴컴한 밤바다를 끼고 달렸습니다.
여전히 파도가 쉬임 없이 밀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포말은 섬뜩하리만치 흰색을 띠었는데 바라보고 있자니 묘하게 무서워지더군요.
마치 검은 머리 풀어헤친 소복입은 여인네가 어둠 때문에 검은 머리채는 보이지 않고 흰 소복만 드러낸 채 무더기로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 읽은 책 중에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경탄해마지 않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나오는 "불 밝힌 열차가 시끄러운 유령처럼 지나가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깜깜한 들판에 서서 불밝힌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시끄러운 유령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밤 바다의 그 흰파도는 소리없이 무더기로 다가오는 소복입은 여인네들이었던 것입니다. 으스스 프스스^^ 밤바다는 무서버...
그렇게 일곱시간을 머물렀던 여행은 끝났습니다.
왕복 차비만 사만원이 넘게 들었는데 겨우 일곱시간이라니, 돈 아깝다는 생각 안드냐고 친구가 어이없어 했습니다.
사실은 그 어이없는 짓은 가끔 했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하는 일이 변변찮을 때...
아마 이번이 네 번째 일 것입니다. 그것도 늦가을이거나 초겨울이었습니다.
그렇게 내려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땐 해장국 한 그릇, 어느 땐 오징어 튀김 한 봉지 먹고 왔던 여행 말입니다. 시간에 쫓길 때는 겨우 한시간을 머물다 온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청량리에서 밤차를 타고 갔는데 내 성질이 더러버서 차안에서는 거의 잠을 못 자는지라 돌아 올 때는 그야말로 소금에 절인 배추 꼴이 되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아예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머물렀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없다거나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여행은 길 위에 있을 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족: 속초 앞 바다에서의 에피소드
식당과 노래방 이 같이 있는 건물 앞에 남자가 서성거린다.
나: (그냥 들어가기 미안해서) 저....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어요?
남자: (멀뚱히 보고 있다가) 아... 피엔소 (손가락으로 오른쪽 입구 가리킨다)
나: (방백) 여긴 아직도 변소라고 하는 모양이야 킬킬. 감사합니다
하곤 들어갔는데... 오잉 중국 관광객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아뿔사 아까 그 남자는 그 여자 중국 관광객 기다리는 남편이거나 뭐 그랬던 것입니다.
에고 하필 외국 관광객한테 화장실을 묻다니... 우째 이런일이...
그래도 그 아자씨 눈치 한 번 빠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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