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토요일에... 시간이 흐르면 행복하였네라고 말하게 될까?

오애도 2001. 9. 23. 02:36
종일을 집에 있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엔 넘쳐나는 약속과 전화로 몸살을 앓았는데 이번에는 적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누구하나 만나자거나 하는 약속도 없었고 어제 상 받는데 메뉴가 뭐였었냐는 전화와 신용카드 갱신한거 전달하러 온다는 전화 딱 두통 뿐이었습니다.
집은 하루 종일 조용하고 -하늘아래 첫 방인지라 자동차 소리라든가 이웃 떠드는 소리도 없음- 감기기운으로 어질어질한 몸을 이끌고 어제 받은 꽃다발을 정리해 화병에 꽂고 또 하나는 손질해서 철사로 꽁꽁 묶어 벽에 걸었습니다.
트로피나 상금이나 뭐 그런 것보다 그 꽃다발 하나가 되게 소담스러워 기분이 좋았습니다.
내 생에 그렇게 화려한 꽃다발을 또 받아 볼 수나 있을 는지...
그렇게 한 아름이나 되는 꽃을 화병에 꽂았더니 그것이 다시 피어올라 더 소담스러워 지더군요.
그것을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고 그 밑에서 거의 종일 낮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먹은 약기운 탓에 해롱해롱 비몽사몽 하면서 깰 때마다 눈앞에 화사하기 짝이 없는 꽃들이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어째 세상은 이렇게 조용한가.
나는 어디에 누워 있는 거야?
얕은 잠에서 깨어나면 그런 생각들이 잠깐잠깐 스쳐지나갔습니다.
겨울 잠 자는 곰이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그렇게 하루의 대부분을 잠도 아닌 것이 꿈도 아닌 것이 비몽사몽하면서 지냈습니다.
저녁 무렵에 어슬렁거리며 일어나 시장엘 갔습니다.
쌀도 한 말 사고, 오렌지 쥬스도 한 통 사고, 라면이며 세탁비누 따위를 사서 낑낑거리며 들고 왔습니다.
그것들을 냉장고에 넣고, 부엌 정리를 하고, 쥬스 한 잔을 따라 마시고, 티브이를 켤 때까지, 당연한 얘기겠지만 화 난 사람처럼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침대 끝에 걸쳐 앉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행복한걸까? 불행한 걸까?
모르겠습니다.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요?
이렇게 평범하고 무덤덤한 날도 있을 것이고, 엊그제처럼 드라마틱하게 꽃다발도 받고 맛있는 저녁 먹고 대중-?-앞에서 박수 받는 일도 있겠지요. 어제 내가 정말 행복하구나하는 따위의 생각을 안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그날 그날을 행, 불행, 무덤덤으로 규정짓는 일은 아마 안 할 것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입니다.
어느 소설 에서 읽은 것처럼 아무 생각없이 백년을 사는 것보다 많은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사는 일이 훨씬 피곤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쨋거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토요일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미래의 어느 토요일, 참으로 슬프고 불행한 일과 맞닥뜨리게 되면, 이 고즈넉하고 아무일도 없었던 토요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날이었는가를 알게 되겠지요.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고즈넉하고 평범한 토요일이고, 삼백 예순 다섯날 중의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다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짧아진 하루 해 탓에 저녁 어스름이 일찍 찾아오고 그속에서 버릇처럼 질병처럼 그리고 운명처럼 느꼈던 허무와 슬픔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