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가끔은 정말 남자가 필요하다!

오애도 2001. 5. 23. 00:42
비가 줄줄 오는데 시장에 들렀습니다. 혼자 살아도 인간답게 먹어야 하는 것! 그래서 이것 저것 샀습니다. 참외 몇 개, 음료수, 덤으로 한 봉지 더 준다기에 스파게티 두 봉지, 떨이로 열무가 석단에 천원이라기에 그걸 샀는데, 아뿔사...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라니,,,
물론 처음엔 무거운 줄 몰랐는데 집까지의 꽤 먼 길을 끙끙대며 그것도 땀까지 질질 흘리며 오자니, 그야말로 힘 좋은-?- 남자 생각이 절로 나더만요.
예전에 내가 일하던 곳에서는 남자가 딱 한사람 있었는데, 그사람이 격일제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수를 배달해서 먹었는데, 그 생수통 교체할 때가 꼭 그 남자 직원 없을 때에 닿더란 말입니다. 빈 생수통을 내려놓고, 물이 가득 든 물통을 두여자가 짓이겨 붙이며 올려놓을 때, 아 그때처럼 남자의 손이 필요할 때가 없었습니다. 지지리 복도 없지, 그 생수는 한 번도 남자 있을 땐 안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도 남자가 가장 필요할 때를 얘기하라면 그 20리터들이 생수통 옮길 때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에이 아닐걸, 하고는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습니다. 남이야 믿거나 말거나 나는 사실이니까, 시비 걸진 않았지만 나같은 사람은 참 어려운 사회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진실이 안통하니까^^;-
각설하고, 그렇게 남자가 그리울 때-?- 바로 화려한 싱글은 졸지에 초라한 싱글로 전락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구 살어, 말어. 남자들이 다 눈이 삐었지 어쩌구... 궁시렁 궁시렁...
밭!-But-그러나, 그러한 초라한 생각은 시장 봐 온 것을 하나 하나 꺼내어 냉장고에 넣을 때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사온 모든 것은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도가 뛰어난 참외-혼자니까 하나만 먹는다는 생각으로 좀 비싸도 되도록 맛있는걸 고른다-,포도 쥬스, 책 한 권, 그리고 정말 맛있는 빵, 모두 다 내거!!
나는 어려서 여러 형제들과 자랐기 때문에 온전히 내 것을 갖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오래된 숙원인 탓에 그렇게 '혼자'인 것에 집착하게 되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든 혼자일 때 가장 뛰어난 행복은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써도 좋을 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누가 뭐라지 않는 자유, 그것이 얼마나 보석같은 가치가 있는지는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물론 그 시간을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한번이라도-?- 든 사람은 혼자 사는데는 쬐끔, 혹은 대단히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혼자 잘 살 수 있는 사람의 특징,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혼자 있는 것은 더 좋다.
어쨋거나, 나에게도 좋은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사는 건 안되겠지만 열무 석 단을 성큼성큼 힘 안들이고 들어다 주고, 안녕! 나갈게 하고 문을 나서면 나는 그를 위해 내가 담은 열무김치에 밥 한그릇 쏟아 넣고, 참기름, 고추장 넣어 비빔밥 한 그릇쯤 해 줄 실력과 너그러운 마음과, 우정은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초라해지기는 하지만, 그 삼백 예순 다섯 배쯤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순전히 내 마음이자 생각입니다.
오늘은 열무김치를 담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