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죽도록 몸살을 앓았습니다. 몸살이라는 것이 특별한 병이 아님을 알 만큼 소소한 질병에는 이골이 난 터라 음 몸살이군 쌍화탕에 종합감기약을 먹고 자야겠는 걸.하면서 약을 삼키고 잠이 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약효가 전혀 없이 밤새 끙끙 앓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오한까지 일어서 그만 기진 맥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혼자 살 때 가장 설운 것이 몸 아플 때라고 하지만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앓을 땐 그런 서러운 생각보다는 왠지 남 못하는 숙제를 혼자 해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답니다.-이게 일종의 매저키즘-?-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음 어떤 거냐면 어릴 적 엄마가 늦게 오실 경우 혼자서 연탄불 갈고 어설픈 솜씨로 저녁까지 지어놓고 엄마가 오셔서 칭찬해 주길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이젠 다 커서 무엇이든 혼자 하는구나하는....따라서 그다지 서럽다거나 쓸쓸한 생각은 별로 안들구요.
그렇게 한 이틀을 앓고 나면 보통은 씩씩하게 일어나 시장엘 가서, 먹고 싶은 반찬거리를 사와서는 따뜻한 밥을 지어 먹습니다. -물론 식욕이 동할 때만요. 그런데 이번 몸살엔 식욕이 사라져버려 그부분은 생략됐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앓고 난 후 시골 부모님께 갔더니 올케 왈, 시집을 안 가서 그런거에요.
에그, 별게 다 시집 안 간 탓입니다.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어쩌다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까지 혼자-싱글-살게 되었냐고 물으면 세월이 쏜화살같이 빨라 어쩌구 시간 탓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게 전부는 아니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깊어-이것도 말치장같네요-서인데 사실입니다. 제가 살아온 것이 쬐끔 특이해서, 하고 싶은 것이나 들여다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 데다 해찰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 뭡니까?
그렇다고 남들은 이 나이까지 싱글로 살면 웬만큼의 부와 명예-?-를 이루어놓고 사는 듯한데 나는 도대체 뭐하고 살았나 싶게 당최 해 놓은 게 없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선, 차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이게 없으니까 앞의 두가지가 없겠지만) 게다가 미모도 없고, 몸매도 없고, 신랑도 없고(당연한 일, 그러니 싱글이지)아이도 없고(아니 없는게 이렇게 많다니...)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만큼이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우선 부모님, 형제, 친구, 집은 없지만 방은 있고, 큰 차는 죄다 내 차라고 느끼는 건강한 가치관, 건강, 살, 솜씨-요리, 바느질,-이건 좀 웃기지만 퀼트를 좀 했거든요-,수영, 말, 글^^;- 그리고 싸가지와 예의, 가장 중요한 명민함과 정의감 그리고 입에 풀칠할 정도는 버는 직업 (아니 가진게 이렇게 많다니...)
감사합니다.
없는 게 너무 많아서 불행한 사람 투성이인 이 험한 세상에 이렇게 부자로 살게 된데 대해서 말입니다
사족.
건방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쳐서 보내주시면 고치도록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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