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

오애도 2003. 11. 24. 08:58
지난 토요일 오후에 덜커덕거리는 프린터가 또 멈췄습니다.
그전에 두 번 쯤을 세탁소에서 세탁물 담아온 비닐 봉투에 담아들고 AS센터엘 가서 고쳐와 썼던 것이지요.

나는 이상한 것에 집착이 있는 터라-일종의 오기다- 아직은 쓸만하다고 굳게 믿고 낑낑거리며 들고 가서 고쳐오곤 했지요.
친절한 AS맨이 '뭐, 새로 사는 게 능사만은 아닙니다. 고쳐쓸 수 있는 것은 고쳐쓰는게 조오치요' 하면서 설렁설렁 나를 앞에 앉혀놓고 무엇이 문제인지 차근차근 설명을 하면서 간단히 고쳐주었습니다.

새로 사는 게 어떻냐고 했더니 새로 산다 한들 모든 것은 다 낡고 닳아지는 것입니다. 고칠 수 있을 때까지는 고쳐써 보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나중에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더군요. 특히 망가진 인간관계에 있어서 말입니다.
각설하고 다른 건 몰라도 기계장치는 수명 다할 때까지 쓰는 나!! 당연히 씩씩하게 들고 왔습니다. -이상하게 그거 고치러 갈때마다 비왔다. 그래서 우산까지 들고 가야하는 곤욕을 치렀다. 옛날 모델이라 꽤 무거웠는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고치거나 없는 부품 사느라 오만 원쯤 들었는데 새로 산 프린터는 겨우-???- 십만원이었습니다. 참...

하여 컴컴하게 저물어가는데 나는 지갑을 옆구리에 끼고 시장가는 포즈로 건전지 사오듯 사서 들고왔습니다. 집에와서 보니 USB전용이니 어쩌구 써 있길래 다시 들고가 내꺼에는 그게 없다구 바꿔 달랬더니 3년안에 나온 거면 다 있습니다. 그 번개모양같은 거 없습니까? 하더군요.
번개모양은 그려져 있는데 구멍은 없는 걸요...
다시 가서 보세요. 그림 있으면 있는 겁니다.
쯧쯧...
다시 털래털래 들고 왔습니다.
집에 와서 다시 보니 그게 다른 코드에 가려 안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묵은 프린터를 떼어내고 새로 산 것을 설치했습니다.
시험인쇄도 끝마쳤고, 여기저기 뒤져 설정도 다시 했지요. 그리고는 시험대비 기출문제들을 드륵거리며 뽑았습니다.
과연 새 것은 역시 좋은 것입니다. 프린트하면서 앞에 지켜서 종이를 밀어 넣거나 잡아당겨줄 필요도 없고, 종이가 있는데도 '종이가 없습니다. 급지대에 종이를 넣어주십시오' 어쩌구 하는 기계적인 목소리에 '바보야, 종이 있는데 왜그래??'하고 소리치면서 종이를 다시 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걸 설치하면서 문득 새삼스럽게 자신이 얼마나 대견스럽던지요.
뭐 지금까지 이사를 하거나 컴퓨터를 새로 사거나 할 때도 배달만 해 주고 혼자서 쓱싹 설치를 했지만 이번엔 그깟 프린터 설치에 그만 자신이 너무나 씩씩해 보이더란 말입니다.
뭐 무겁진 않았지만 기계장치 하나를 건전지 사듯 설렁설렁 들고와 몇분만에 상황끝, 할 수 있는 건강과 자신감과 명민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혹여 이렇게 늙어죽을 때까지 혼자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사소한 것에서 불편하면 참으로 힘들겠지요. 물론 나이먹어 기운 없으면 자신 있게 '가까우니까 들고갈께요' 이런 말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자... 누가 뭐라든 나는 할 수 있는게 많은 인간입니다.
물론 일찍 잠 드는 일이나 파를 먹는 일, 탄수화물위주의 식사습관을 바꾸는 일이나 생수통을 혼자 들어서 냉온수기에 올려놓는 일, 노래나 달리기를 잘 하는 일에는 무능하지만 남에게 손 안 벌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거든요. ^^;;

그런 의미로 나는 내가 자랑스러운 걸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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