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여자아이가 울다!

오애도 2003. 11. 12. 01:22
학원에서 수업 중에 여자아이가 갑자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어쩐 일인지 가르치는 아이들이 스무명 가까이 되는데 여자아이라고는 딱 두 명이다.
죄다 개구지고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남자아이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남자아이들의 좋은 점은 가끔 덱덱거려도 다시 돌아서면 헤헤하는 그야말로 남자스러운 단순함이다. 반대로 여자아이들은 별로 덱덱거릴 일은 없는데 상당히 조심스럽다.
어쨌거나 아무리 말똥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것이 사춘기 시절이라지만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는 열 여섯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아서 가끔 농담을 해도 말간 얼굴로 진지해져서 머쓱하게 하는 아이다.
내 책을 한 권 줬더니 그걸 어찌나 열심히 읽었던지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가끔 내 대사를 그 아이가 친다.
겨우 두 명의 학생 중에 한 명인지라 한 명이 한동안 결석을 해서 혼자서 수업을 받기도 했었다.
나는 지겨운데-논술이랑, 국어랑 어느 땐 세 시간이다- 그 아이는 하나도 안 지겨운 얼굴이었다. 그래서 '너 안 지겹냐' 했더니 '선생님은 지겨우세요? 섭섭해요'했었다. 뭐 나랑 수업하는 게 즐겁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힘들고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참 용언이 어쩌구 체언이 저쩌구 하는데 달기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끼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 전에 늘 상 힘 빼고 있는 옆의 남자아이더러 머리도 좋은 놈이 어찌 노력을 안 하냐고 윽박질렀는데 그게 그만 자신은 머리 나쁘다는 얘기로 들렸나보다.
선생님 왜 저는 머리가 나쁠까요?
오잉!! 그것이 아닌디...

가끔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뜻하지 않는 곳에서 당황하게 된다.
예를 들어, 너는 참 잘 생겼구나 하면 옆에 있는 아이가 자신은 못생겼다는 걸로 알아듣는다.
머리도 좋은 놈이... 이러면 옆에 있는 아이는 졸지에 머리 나쁜 아이가 되 버리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흑백논리의 오류가 아닌가!!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살면서 내가 많이 받는 오해가 이상하게 사실진술을 하면 그걸 의견진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진술이라는 것은 그것이 감정이나 정서의 배달을 위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다분히 단정적이고 지시적인 언어를 쓸 수밖에 없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약간 실실대며 말하는 인간인지라 진지한 눈빛을 하고 진지한 진술을 하면 그게 좀 무섭게 보인단다.
그러다보니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를 갖고 토론이라도 붙으면 괜히 나는 학질뗄 싸움꾼이 된다. 참~~ 알고 보면 나도 상당히 진지하고 냉철한-??-구석이 있는 인간이다.

하여튼 각설하고, 그 아이는 나머지 수업시간 내내 설움이 복받치는 듯 흑흑 흐느꼈다.
나중에 수업 끝나고 혹시 선생님 말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는 했다.
물론 그 아이는 내가 편협한 생각으로 그렇게 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나오면서 다시 봤더니 말갛게 개어서, 눈물을 흘렸더니 머리가 아파요.... 했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가 예뻐 보였다.
그렇게 느닷없이 감정이 격해지고 흑흑 울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그 아이만이 갖고 있는 여린 감성이자 그 나이만의 특권같아서 말이다.
'그래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는 걸.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스멀스멀 눈물이 차오는 것 말이야'
밤 늦게 나오는데 마음이 시렸다.
차고 맑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과연 그렇게 말간 눈물이 나에게도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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