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이사 에필로그.

오애도 2003. 9. 19. 12:32
엊그제 새로 산 커튼을 다는 것으로 짐정리가 거의 끝났습니다.

한 칸 짜리 방에서 그래도 세 칸짜리 방으로 옮긴 탓에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사진틀이라든가, 파리여행중에 샀던 노틀담 사원 그림-우표보다 조금 크다.그걸 어느 구석에선가 끄집에 내면서 이른 아침 쌀쌀한 파리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둘러봤던 노틀담 사원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하리만치 쓸쓸하게 여행이 하고 싶어졌었다-같은 걸 구석구석 놓아두거나 벽에 붙이거나 합니다.

누군가는 사는 게 참을 수 없이 무료해지면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고는 이사를 한다고 하더군요.
책 몇권에 이불이며 곤로따위가 살림의 전부였던 탓에 그런 이사는 생활을 제로로 돌렸다가 다시 시작하는 맛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엊그제 한 이사는 그런 제로화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니 제로화는 커녕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또 몇 개의 잡동사니를 사들이고 말았습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그 참을 수 없는 잡동사니를 보면서 어찌나 끔찍하던지요.
한 사람이 사는데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인지도 수상했고, 그게 어딘지 모르게 참을 수 없는 욕심의 증거같아 보이더란 말입니다.

정리함으로 쓰려고 샀던 플래스틱 소쿠리가 여남으개나 있었는데 고리 달린 거-그것도 두 개 달린 거, 하나 달린 거- 네모진 거, 동그란거, 타원형등 가지각색으로 그건 사은품도 아니었고 어딘가 쓸모가 있을거야 하면서 하나 둘 사들인 것입니다.
게다가 사은품으로 받아온 조잡한 사각 통이며 버리기 아까워 간직했던 뚜껑달린 유리병, 플라스틱 병, 녹차 담겨있던 종이통까지...

안 듣는 카세트 테이프, 어찌어찌 굴러온 이상한 시디, 여기저기서 받은-주로 학생들- 이러저러한 팬시용품들, 쓰지도 않는 볼펜 수십자루, 괜히 미안시려워서 못버린 여러종류의 포장용 리본, 잘 안보는 시계-그 중에 손목시계가 다섯 개, 그것도 망가졌거나 약-??-이 다 된 것-, 또 어찌 굴러온 수첩 몇권, 오래된 노트-빈 공간이 많아서 못 버린다- 혹시나 해서 모아둔 어디서 빠진지도 모르는 나사 못 수십개, 어답터 한자루-??- -과감히 버렸지만 100볼트 콘센트도 한 보따리였다- 예전에 쓰던 삐삐. 미키마우스 모양의 집게 잘린 삐삐 고리, 핸드폰 고리 대여섯 개. 낡았지만 다 사연 있는 열쇠고리.
잘 안쓰는 화장품들.-립스틱이며, 파우더, 마사지용 크림, 헤어케어제품-, 별로 안 보는 책 수십권, 몇년이 지나도 들지 않는 낡은 핸드백이며 가방, 어찌어찌해서 못 입게 된 바지며 셔츠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과감히 버려야지 하고 종일 분류작업을 했지만 일어나 보면 거의 다 그대로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잡동사니들은 다시 구석구석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아가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들을 사 모을까요?
현대사회라는 게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고, 새로운 것들을 생산해 내는 탓에 필요에 의해서라기 보다 새로운 것, 편리한 것에 대한 욕망에 의해 물건들을 구입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것들의 내구성은 그야말로 반 영구적입니다.
닳아지거나 낡지 않은 채 버려지는 것들은 어딘가 우리 주위에 쌓여지겠지요.

나는 더 편리한 것, 더 멋있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것에 밀려 쓸모가 없어진 잡동사니를 다시 끌어안으며 머릿속이 자글자글 복잡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는 것들 때문에 치어 사는 게 넌덜머리가 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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