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떠나기 전의 소고!!

오애도 2003. 4. 14. 00:59
친구와 버스 터미날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 놓고 이것을 쓰고 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긴 널럴한 날들에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 해놓고 벼른 지가 대체 언제부터였는지 모릅니다.
홍콩을 시작으로 제주도며 보길도며 그동안 가 볼까 했던 곳이 한 두곳이 아니었는데 결국 또~~ 해인사를 가기로 한 것입니다.
아침 일직 일어나 주섬주섬 보따리를 챙기고 샤워를 하고 김밥 쌀 준비를 해 놓고 이것을 쓰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며칠 전 꽃시장에서 사 온 도라지 꽃 닮은 자잘한 흰 꽃을 달고 있는 작은 화분이 놓여있습니다.
그거 사 와서 내내 몽글몽글 송이가 되고 잎을 벌리는 모습을 코 앞에 대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길떠나기 전 거기에 물을 주면서 깊은 산 속이거나 들에서 저 혼자 피었다가 지는 이름이 없거나, 이름도 모르거나, 이름이 있으되 불려지지 않는 꽃들을 생각했습니다.

오래 전 조용필 노래에 '들꽃'이라는 노래가 있었지요.
다른 어떤 것보다 노랫말이 아름답습니다.
돌 틈 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으로 산다 해도 나 항상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리라 어쩌구 하는 것이었는데 그 앞 부분에 바위 틈에 한송이 들꽃이여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들으면 뭐랄까 햇빛 따뜻하고 조용한 깊은 산속의 잡풀 속에 피어 있는 꽃들이 현기증처럼 떠올랐거든요.

어릴 적 혼자 산 속 헤매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림으로 그리라고 해도 선명하게 그릴 것 같은 그 풍경을 알고 있습니다.

길 떠나기 전 저 혼자 피어 있을 꽃들을 위해 나는 물을 줍니다.
보아주는 사람이 있건 없건 책상 위의 저 키 작은 꽃은 고즈넉한 방안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겠지요.
기다리지 않아도 어둠이 내리고 아침이 오듯이 뭐 그렇게 꽃은 묵묵히 운명처럼 피고 지는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지거나 세상에 드러나기 위한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말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별 게 다 마음 가볍습니다.
적어도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혼자 있어 마음 걸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자... 꽃은 꽃이고 떠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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