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발작처럼 나는 존재를 앓는다!!

오애도 2003. 2. 23. 01:14
한참 사춘기의 중간을 달리고 있는 다섯 녀석들과 씨름을 하고 왔습니다.
손바닥을 한 대씩 맞고도 웬 웃음보가 터졌는지 쿡쿡거리며 웃는 통에 나도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아홉시 넘어 아이들이 가고 텅 빈 공부방 책상 앞에 잠깐 앉아 있었습니다.
가만히 조용히 그 빈방에서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림처럼 앉아 있다가 덜그럭거리며 설거지를 했습니다. 텅 빈 방안에서 말없음표와 함께 설거지 소리가 떠돌아 다녔습니다.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기는데 당연히 화 난 사람처럼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아니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걱거리는 말없음표와 함께 나는 문을 잠그고 나왔습니다.

낮에 느닷없이 멈춘 프린터와 씨름을 하다가 불쑥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습니다.
순간 미친사람처럼 프린터를 집어던질 뻔 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프린터 대신 책상 위에 있던 몇 권의 책과 핸드백 따위를 벽을 향해 집어던졌습니다. 그리고 발작처럼 기침이 났고 기침 끝에 아침 먹은 것을 죄 토하고 말았습니다.

밖에는 종일 차가운 비가 소리도 없이 내렸지요.
안쪽 창문만 열어놓고 나는 내리는 비를 보다가 말다가...

묵은 흰떡으로 떡국을 끓이고 곰살궂게 김가루를 얹고 저민 쇠고기까지 얹어 놓고 멀뚱하게 바라보는데 스멀스멀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기계적으로 뜨거운 떡국그릇과 입으로 수저를 움직이며 갑자기 끅끅 울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잔뜩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 하나 떠오르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 하나 그리운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종일 우울해 했습니다.
프린터 탓이 아니라는 거 잘 압니다.
왜냐하면 프린터가 덜컥거리며 움직여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거든요.

새벽녘 꿈에 닭고기집에 갔다가 덜 익은 돼지고기 먹는 꿈을 꾸었었습니다.
어찌하여 닭고기집에서 날것에 가까운 돼지고기를 먹고 왔는지는......모르겠습니다.
짐작도 해석도 안됩니다.
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위 상하는 음식 맛이 종일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꿈 탓인 모양입니다.
종일 시궁창 언저리를 배회하는 것 같았습니다.

봄이 오는 모양입니다.
새 계절의 입구에 들어서느라 시간은 저 혼자 몸살을 앓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 속에서 나 또한 존재를 앓아냅니다.
발작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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