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질 수도 있는게 스포츠 게임이다.

오애도 2002. 6. 12. 00:02
오래전에 스포츠 광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복싱 세계 챔피언 전이나 세계 배구 선수권 같은 건 정말 빼놓지 않고 보곤 했었지요.
그런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이기면, 가슴 저 밑바닥에 묵직하게 얼마나 감격적이었던지요.

고교 야구도 좋아했고, 프로야구도 좋아해서 중계방송 보면서 괜히 흥분하거나, 멀쑥하니 서 있다가 삼진당하고 내려오는 선수 보면서, 뭐야, 투 아웃에 풀 카운트인데 한 번 휘둘러보지 그걸 그냥 기다리냐? 어쩌구 중얼 거리면 옆에 있던 누군가 그랬었습니다.

넌 나중에 야구 해설자하면 잘 할 거다...^^

김재박 선수 보려고, 프로야구 이전에 실업야구가 있었는데 서울 운동장-지금의 동대문 운동장-에 혼자 야구 보러 갔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관중이라곤 그넓은 스탠드에 열명 남짓... 너무 썰렁해서 외야쪽 수비선수와 눈이 마주치면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끝까지 다 보지도 않고 나왔는데 입장요금이 체육진흥기금만 받았는데 60원이었습니다.
의외로 관심이 없었던 종목이 농구였었습니다.

어쨋거나 그때 그렇게 미쳐 있었던 탓인지 지금 유달리 좋아하는 스포츠는 없습니다.
그저 국제경기 같은게 있으면 텔레비젼 틀어놓고 딴일 하면서 귀로 듣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지난 번 한국 폴란드전 할 때도 교육방송 틀어놓고 고스톱 게임 했습니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경기 집중해 보면 꼭 지는 징크스가 있어서리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과감히 시청을 포기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지면 내 탓일 것 같아서...
그러다가 우와 하는 함성 들리면 얼른 채널 돌리고, 또 우와 하면 다시 또 채널 돌리고...

전국민이 동시다발적으로 함성을 지르는 탓에 창문만 열어놓으면 승부는 귀로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하지만 이겨도 옛날에 느꼈던 가슴이 묵직해지는 감격은 이젠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마 세월의 길이에 따라 애국심-??-도 퇴색해가는 모양입니다.

"왠지 이번엔 질 것 같지 않아요?"
저녁에 공부 중에 아이가 말했었습니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하고 나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기대해서 분명히 선수들 발목을 잡을 거예요..."

무엇이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거나 드러내면 동티가 나는 경우가 있으니까 모두들 좀 자중했으면 하는 뜻에서 한 말일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도 무엇인가 중대한 일에는 말 한마디 하는 것에도 늘 조심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속으로만 간절하게 빌었던 것이지요.

사실 나는 월드컵에 미친듯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뭐 이즈음에 월드컵에 관심없다는 말 하면 여기저기서 매국노라는 비난이 빗발처럼 쏟아지거나 잘못하면 어딘가 질질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달할 것 같은 분위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

원칙론이긴 하지만, 스포츠라는 것이 그저 정정당당히 멋있게 최선을 다해 싸우면 되는 것이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승부가 덧붙여져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좋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일 테구요.
그런데 요즈음의 분위기를 보면 그저 우리나라가 이기는 것만이 지상목표가 된 듯합니다.

자... 져도 괜찮다... 혹은 질 수도 있다...하고 선수들 무거운 어깨를 풀어줍시다.
그래야 몸 가볍게 뛰고 이기기도 하지요...
지금 같아서야 어깨 무거워 어디 제대로 뛸 수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지고나면 또 쥐잡듯이 감독이며 선수들 일제히 볶아대지 말구요.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우리나라 모습입니다.

우린 그렇게 모두들 완벽한 것인지...

월드컵 열기를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