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처럼 주룩거리며 비가 내립니다.
비오는 날은 이상하게 자꾸만 자꾸만 차가 마시고 싶어집니다.
다 마시고 난 빈 컵을 보며 다시 불을 댕겨 물을 끓입니다.
녹차를 마시고, 밤인지라 당연이 디카페인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요새 새롭게 맛을 들인 밀크티도 한 잔 마셨습니다.
이렇게 출렁이는 배를 안고 그대로 자다가는 분명 참을 수 없는 요의탓에 잠을 설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종류별로 차를 마시며 말없이 책상 앞에 앉아 어제 구해 온 시나리오를 읽었습니다.
상당히 리얼한 대사들을 읽어내리며 생뚱맞게 연기 한 자락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잠깐 성우를 하겠다고 한 때 몰두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스물 근처의 나날들이었을 때 당연히 지금의 걸걸한 탁배기 목소리에 비하면 그때는 그래도 생기 있고 말랑말랑하고 탱그르르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고 사람들이 말을 했던 탓에-사실 성우가 아니라 아나운서가 되보라고 했었다. 한 다섯명 쯤이...-그걸 진짜로 믿고 나름대로 열심히 이것저것 공부를 했었습니다. 라디오 들으며 드라마 따라 해 보기, 외화 더빙한 거 녹음해서 반복해서 듣기, 고즈넉하게 목소리 깔고 심야방송 흉내내 보기, 큰소리로 책 읽어 보기등등... -지금도 옛날 잡동사니 모아두는 파일 안에는 KBS성우시험 수험표가 두 개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떨어졌을 때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 때 내 나름으로 공부했던 것은 상당히 요긴하게 써먹는 중입니다. 글이건 말이건 호흡이 중요한 거니까 그 호흡법을 익혔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한 때 강의시간에 동료가 썼던 희곡작품 리딩할 때는 박수도 받았었습니다. 후후. 늙은 어머니 역이었는데 딱 분위기 죽였었지요. -그러고 보니 별 걸 다 할 줄 아는 인간이군^^;;-
하여 오랜만에 혼자서 중얼거리며 이것저것 대사를 쳐보았습니다. 아주 재밌었던걸요.
어쨌든 그 때 참 이상했던 것은 녹음해서 내 목소리 들으며 느꼈던 낯섦이었습니다. 전혀 내 것 같지 않았던 그 생경함이라니....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 대해 전부 다 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는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때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여 어찌 보면 타인이 보는 내가 더 정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사람의 판단이란 게 분명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탓에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종종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생각합니다.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니야 하고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나는 보여지는 것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더 형편 없는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때로 어떤 것은 지나치게 확대되어 보이고 또 어떤 것은 지나치게 작은 것으로 왜곡되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나치게 확대되어 보이는 경우는 대부분 관계의 시작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축소되어 보이는 경우는 적당히 관계가 무르익어갈 때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지나치게 좋은 감정만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는 버릇이 꽤 오래 전에 생겼습니다.
나는 늘 그대로인데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 편하고 좋은대로 나를 판단하고는 가까워지면 자신이 본 게 다가 아니네 하고 투덜대는 경우가 종종 생기거든요.
뭐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사람이란 게 누구에게나 다 비슷한 부분이 있고, 그러면서 누구하고도 다른 그 사람만의 특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만의 특성에 감동해서 다가오는 사람은 당연히 그사람이 갖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부분들이 보이면 실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는지 모릅니다.
요즘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일이 잦아집니다.
사실 어떤 만남이든 처음은 그나름의 설렘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나는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보지 못하고 아직도 미망에 헤매고있는 못난 인간이란 결론입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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